빌헬름 함메르쇠이 <햇빛이 드는 방>
비움
빌헬름 함메르쇠이 <햇빛이 드는 방> 그림을 보고 ‘비움’이라는 글을 쓰고 싶어졌다. ‘비움의 미덕’을 많이 느끼며 살아가는 요즘이다. 집의 물건을 많이 정리하고 있다. 비우니 공간이 보이고 공간이 비우니 살 것 같다. 남은 삶의 여정을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하게 보내느냐를 생각하는 요즘이다. 근래의 나는 많이 단단해지고 있노라 생각하며 나를 사랑하며 비워나가는 중이다. 아직은 무언가 완성되지 않은 나를 다시 비우면서 가득 채워져 있던 나를 다시 세운다. 결국 인간은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가는 여정을 걸어가야 한다. 오늘은 나의 몇 가지 비움을 기록해 보자.
위장 비움
나는 이따금 체한다. 소화 시키기 어려울 때 속을 비운다. 나는 몸이 살짝 추울 때라던가 대화를 끝없이 듣고 해야 할 때 체한다. 성격이 그리 활발하지 않다는 게 이럴 때마다 확인할 수 있다. 두세 시간 정도 대화를 하면 딱 좋다. 그런 뒤 고요한 상태로 스스로 충전해야 한다. 상대가 불편하거나 그런 것은 아니다. 진정 아니다. 예민한 사람으로 나를 치부하고 싶지 않다. 그냥 나는 그렇다. 그런 사람도 있는 거다. 가끔 나의 성향이 뭐가 맞는지 모를 때가 있다. 체하는 순간을 보면 영락없는 나는 내향적인 사람이다. 체할 때 속만 더부룩하면 좋으련만 두통이 심하다. 심한 두통은 누워 잘 수도 없게 한다. 지금 글을 쓰는 순간에도 그 고통이 고스란히 느껴져 너무 괴롭다. 팽팽 돌고 도는 천장을 보며, 고통스러워 몸을 뒤척이면서 눈물 흘릴 때도 있다. 검색해 보았다. 체 할 때 왜 두통이 심한가. 몸은 참 정직하다 싶다. 소화를 시키려고 애쓰며, 위로 혈액이 모인단다. 과식하거나 소화가 잘되지 않으면 위장이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위장 쪽으로 혈액이 집중된다. 상대적으로 뇌로 가는 혈류량이 줄어들면서 두통이 발생한다.
머리가 너무 아플 때 두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구토다. 위를 비우면 두통이 멈춘다. 소화를 시키기 위해 위로 혈액을 보내는 걸 멈추면 몸은 그걸 알고 두통을 멈춘다. 신기하기도 하고 그 이유를 안 뒤로는 긴 시간 대화가 나에게는 무리임을 알고 미리 나를 다독인다. ‘즐겁지만 나를 위해 쉬는 시간을 주자.’ 오랜 시간 앉아서 노는 것도 몸이 따라줘야 한다. 더 시간 보내고 싶지만 무리하면 힘들어지니 나를 위해 멈춘다.
생각 비움
마음이 답답할 때는 머리를 비운다. 글로 비우던 시간도 지나고 보니 좋았다. 생각 자체를 하지 않으면 될 것 같아 다른 생각을 넣기도 한다. 영화를 보거나 드라마를 본다. 끝없이 이어지는 이야기에 잠시나마 주위를 환기한다. 아픈 생각을 계속하면 나아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 굴레를 벗어나기 쉽지 않을 때는 두 번째로 글을 쓴다. 글로 아픔을 직면하고 글로 아픔을 쓴다. 제삼자의 마음으로 되기가 쉽지 않을 때는 객관적으로 직면하는 힘을 쓴 글을 다시 여러 번 읽으면 자연스레 생겨난다. 제삼자의 마음이 들지 않으면 더 여러 번 읽어본다. 읽다 보면 우습게도 계속 울다가 틀린 글자를 발견하기도 하고, 어색한 문장을 찾기도 한다. 글을 여러 번 읽고 나의 이야기를 재차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울음이 그칠 때가 온다. 그치지 않는다 해도 분출하고 터뜨려진 내 마음의 글은 나의 아픈 마음을 비울 수 있도록 도와준다.
전문가를 만나 대화하는 것도 비울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혼자만의 글쓰기조차 힘이 없는 날이 있다. 글을 쓰기 위해 이불 밖을 나서고 커피를 사서 자리에 앉아 자판을 두드리기 전까지 얼마나 많은 준비와 마음가짐이 필요한가. 가끔 그 작업까지 가기가 산과 들, 바다를 건널 만큼 멀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전문가를 찾는 것이 좋다. 전화기만 들면 되는 상담번호도 있다. 얼굴을 노출하지 않고 나의 이야기를 하는 곳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통의 소리를 묵묵히 들어주고 천천히 답을 들으면 많이 나아진다.
나와 비슷한 상황에 부닥친 글을 읽는 것도 도움이 된다. 나만 혼자라는 생각이 얼마나 두려움과 외로움을 만들어 내는지 아는가. ‘나만 그런 것이 아니야. 나는 혼자가 아니야.’ 이름 모를 누군가의 짧은 글 속에서 나의 아픔을 함께 공감하는 내용을 만나는 순간은 뜻깊은 조우다. 한 줄기 빛과 한 줌의 소금이다. 비우면 다시 채울 수 있다. 아픔을 비워야 행복도 들어온다. ‘똥차 가면 벤츠 온다.’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지 않나. 비우고 비우다 보면 다시 채워지는 무언가를 위해 오늘도 기다려 본다. 빌헬름 함메르쇠이 <햇빛이 드는 방>의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그 햇살을 위해…. 오늘도 우리는…. 모두가 사느라 고생했다. 오늘도 참 애썼다. 살아내느라. 비워내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