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면서 재미 삼아 봤던 운세에 나에게는 방랑벽이 있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 상황이 안정되고 편안해지면 가만히 즐기지는 못하고 새로운 것을 찾는…
스몰비즈니스 스페셜 Lending팀의 디렉터로 옮긴 건 역시나 좋은 선택이었어. 일단 VP인 S는 과거에 D 씨의 비서역할을 했던 사람으로 심지어 D 씨가 해외사업부 CFO일 때 런던을 따라갔다 올 정도의 오른팔인 사람이었어. 역시나 D가 보여주던 리더십의 모습을 많이 닮아있었고 아무래도 젊은 편이니 더 편하게 챙겨주며 아랫사람을 Advocate해주는 능력이 탁월했어. 나도 어느 정도 회사 내에서 입지가 생기다 보니 Individual Contributor들의 멘토도 많이 해주고 많은 1대 1 미팅도 하고 있었지. 이를 통해 내팀에 일 잘하는 사람들을 많이 데려올 수 있었고. 나 역시 D에게 배운 데로 그들의 동기부여를 위해 연말 Calibration에서 싸우고 연봉조정 같은 리워드를 제대로 주기 위해 노력했어. 팀은 젊었고 D의 후광 때문인지 스몰비즈니스의 리더들도 상당히 서포트를 잘해줬어.
이미 VP승진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어 이런저런 롤에 관심 있는지 물어보고 나보고 지원해 보라고 하는 등..
하지만 나는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해외사업부를 바라보고 있었어. Credit Risk일을 10년 가까이해오며 소비자 기업부분에서 승인, 한도조정, 이자율의 일을 했으니 Lending분야에서는 채권추심분야 말고는 다 해본일이고. VP는 해외사업부의 큰 마켓 (일본, 캐나다, 영국, 호주, 멕시코, 인도, 홍콩)에서는 Chief Credit Officer라는 팬시한 이름으로 전체 신용리스크를 대표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어. (미국은 워낙 크니 EVP가 하는 일이지). 미국에서 Function하나를 맡아서 하는 거보다 End-to-end를 다 총괄하니 더 배울 것도 많아 보였고. 좀 더 글로벌하게 일해보고 싶었고. 하지만 해외사업부는 보통 내부이동에서 가기가 힘들어. 보통 해외사업부에 있는 사람들끼리 이동을 하지.
D에게 해외사업부 CCO를 하고 싶다고 말했어. 사실 조금 뜨뜻 미지근한 반응이었지 힘 있는 미국사업부에서 키워주고 싶었을 테니. 하지만 D 씨는 거듭 묻더니 결국 해외사업부 총괄과 APAC 사업부 총괄에게 나를 소개해줬어. 그리고 나는 3개월마다 1대 1 미팅을 잡았고. 만날 때마다 7개 마켓에 대해 연구한 것들을 가져갔어. 왜 이런 상품은 안 나와? 왜 Net interest margin은 이렇게 작아, 신용평가사 데이터들은 어때 이런 질문도 하고. 그에 더해서 현재 7개국에서 CCO를 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랑 3개월마다 만나는 미팅을 잡았어. 만날 때마다 그 마켓에 대해 내가 조사한 것 경쟁사의 상품과 우리 회사 상품의 비교, 현재 미국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들 관심이 있을만한 것들을 들고 가고. 이걸 거의 1년 반동안 한 거 같아. 내가 배고픈 사람이니 그 사람들의 캘린더에 맞춰서 밤늦게 심지어 새벽 2시에 미팅을 하는 일도 허다했지..
미국 내에서 VP자리가 날 때마다 리더들은 나에게 찾아왔어 왜 이롤을 지원 안 하냐고. 정중히 거절하고 계속 해외사업부 롤에 매달렸지. 하지만 1년 반이 넘어가자 슬슬 조급해지기 시작했어. APAC 총괄이 미국출장을 왔을 때 이야기했어 아무래도 더는 못 기다릴 거 같다고. 이제 아이도 유치원을 가야 하는데 이사도 생각해야 하고 이렇게 계획도 못 세우며 무작정 기다릴 수는 없을 거 같다고.
그래서일까 하루는 회사의 CRO가 나를 불렀어. 호주에 지금 있는 CCO가 이미 4년을 했다. 더 큰 롤을 위해서 미국으로 올 거 같으니 거기에 CCO롤을 만들려고 한다. 너랑 현재 싱가포르에 있는 (여기는 작은 마켓이라 디렉터가 CCO) CCO가 두 명의 front runner다라고. 인터뷰 잘하라고 부탁을 했어.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기회가 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