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돛이 없는 돛단배
Oct 31. 2024
점점 셀프서빙을 도입하는 식당이 늘어나고 있다. 다른 사람들은 자유롭게 음식을 가져다 먹지만, 나는 애초에 그런 식당에 들어갈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음식을 들고 움직이는 일이 나에게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맥도날드나 롯데리아, 혹은 뷔페 같은 곳은 아예 발걸음을 들일 생각도 하지 않는다. 대신 서빙해 주는 식당을 찾아다니며 배를 채우는 날이 많다.
그런데 그런 식당마저도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메뉴를 고를 때조차 나는 늘 신중해진다. 발음하기가 쉬워서 직원이 잘 알아들을 것 같은 메뉴를 고르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그 음식이 좋아서라기보다, 내가 주문하기에 편한 것을 선택할 뿐이다. 내가 원하는 음식을 마음껏 선택하지 못하고, 그저 말하기 쉬운 메뉴에 만족해야 하는 나는 순간순간 무력함을 느낀다.
심지어 물 한 모금조차 쉽게 마실 수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물을 셀프로 가져다 마셔야 하는 식당에서는 결국 목마른 채로 음식을 먹고 나오는 일이 다반사다. 그렇게 갈증을 달래지 못하고 식사를 마치며 나는 속으로 좌절감이 스며드는 것을 느낀다.
카페에 가서도 도전은 계속된다. 일회용 컵 사용이 금지되기 전에는 뚜껑이 있는 플라스틱 컵에 커피를 받아 카페 안에서 여유롭게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머그잔을 들고 걸을 수 없기에 어쩔 수 없이 뚜껑이 있는 플라스틱 컵으로 주문하여 밖으로 나와야만 한다. 카페 안에서 여유를 누리고 싶어도, 나에게는 길가에서 커피를 마시는 것만이 허락된 선택지다.
이런 경험들이 하루하루,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반복된다. 내가 원하는 음식을 자유롭게 선택하지 못하고, 물을 마시고 싶어도 스스로 가져올 수 없으며, 여유로운 순간을 기대해도 항상 제약이 따른다. 작은 불편들이 나의 하루를 채우고, 나는 그 불편과 싸우며 버텨야 한다.
거울 속 나를 바라볼 때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 나에게는 깊은 좌절감을 안긴다는 사실이 날카롭게 다가온다. 그들이 아무렇지 않게 누리는 일상들이, 나에게는 무거운 벽이 되어 하루하루를 짓누른다. 마치 손을 뻗어도 닿지 않는 빛처럼, 그 평범한 일들이 나와는 아득히 멀게만 느껴진다. 반복되는 무력감 속에서 나는 점점 더 작아지고, 그 속에서 나의 슬픔과 분노는 고요하지만 깊은 울림으로 나를 잠식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