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행복한 삶을 꿈꾼다. 그러나 내가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UN에서 발간하는 세계행복보고서에 OECD국가 중 한국이 행복지수가 제일 낮다는 사실 말고도 우리는 주위에서 지금은 행복하지 않으니 행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끊임없이 갈망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행복의 조건이 뭐가 있나 찾아보지만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야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데서부터 불행이 싹튼다.
경제적으로 풍요롭다는 기준은 너무나 천차만별이어서 어느 수준이 적당한 것인지 어느 수준이 풍요로운지 사실 따지기 어렵다. 84m2 신축 아파트에 살면 적당한 것인지 연봉이 1억이면 풍요로운 건지 정확히 말할 수 없다. 물론 대한민국 평균 소득을 따져가면 객관적인 경제적 위치를 가늠해 볼 수는 있다. 그러나 이 위치가 행복을 느끼는 위치와 대응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학교에서 학생들과 얘기하다 보면 배달알바를 해서 단기간에 떼돈을 벌 것이라던가 의치한약수에 진학해서 안정적 고소득 전문직을 갈 것이라던가 그것도 아니면 "선생님 인생 한방인데 코인으로 가야죠!"라며 열변을 토하는 경우가 있다. 어떤 직업을 가지든 소득이 얼마든 그것이 행복을 담보해주지는 않는다. 그러려면 OECD 행복지수가 GDP 순위와 유사해야 하고 고소득을 올리는 사람들은 모두 행복해 마지않아야 할 텐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행복이 무엇인가는 인류의 공통과제이다. 행복의 정의는 철학자 종교인 심리학자 등 모두가 다를 테지만 나는 마음이 평온하며 내적으로 기쁨이 차오르는 상태라고 말한다. 이때 핵심은 행복을 역치를 낮추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작은 것에 만족을 하는 삶이다. 어제까지 습한 기운에 밤까지 끈적하다가 갑자기 오늘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이 너무 반갑고 가을의 문턱을 밟고 있음을 알아 차리는 것, 오늘 읽은 책의 문구에 위로를 받고 그 문구에 위로받은 이웃이 있다는 소식을 듣는 것, 갑자기 바삐 끓여낸 찌개에 식구들이 맛이 좋다며 밥그릇을 비우는 저녁 식사를 떠올리면 마음이 평온해지고 어떤 뿌듯함과 기쁨을 느낄 수 있다.
행복이 멀리 있지 않다는 말은 식상하다 못해 지겹지만 사실 그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어디 있다는 건지, 어떻게 발견한다는 건지 와닿지 않았을 뿐이다. 작은 것에 반응하는 삶을 꾸려야 한다. 행복의 역치를 의식적으로라도 낮춰야 한다. '이게 뭐, 그래서 어쩌라고, 이거 말고 다른 거, 더더더 좋은 거'를 외칠 때야 말로 공허의 수렁에 빠질 수밖에 없다.
행복을 추구하고자 사다리를 타고 위로 오르려 오르려 해도 끝이 없다. 오르다가 지쳐 목숨을 다하거나 더 올라갈 곳만 추구하다 발을 헛디뎌 떨어지거나, 혹은 아래를 내려다보고 허무해서 스스로 사다리에서 내려오는 지경에 이를 것이다. 행복을 위해 사다리를 오른다면 나와 함께 오르는 이가 누군지 소중히 여기고 사다리 옆의 나무와 구름과 하늘을 느끼는 것만이 진정한 행복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 너머의 행복은 허상이다. 그것을 희망 삼아 오르되 그 과정에서의 작은 일상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흠뻑 감상한다면 행복이 멀리 있지 않다는 말을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