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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림 Dec 17. 2024

아름다움은 상처의 총합

상처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사람은 아름답다

세상의 아름다움은 상처라는 렌즈를 통해서만 볼 수 있다.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세계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 한강 작가님이 노벨문학상 수상자 강연 중 서술하신 문장이다. 이 문장을 곰곰이 곱씹다보니, 사실 세상의 아름다움은 어쩌면 필연적으로 고통과 상처라는 렌즈를 통해서만 발견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중에서도 영화는 캐릭터와 서사를 빌리어 우리의 내제된 상처를 우리로 하여금 직시하게 하고, 재해석의 기회를 제공함으로서 우리를 살아내게 한다. 우리에게 좋은 렌즈를 제공하는 셈이다. 여러 편의 영화를 이러한 관점에서 해석해 낸 책 한권을 소개한다.

강성률, 상처의 응시 (아모르 문디, 2020)는 한국에 개봉한 영화 중 자신의 해석 욕구를 자극한 작품들을 비평하며 비평가가 영화를 해석해야 하는 방식을 제안하고 분석한다. 책의 저자는 영화 평론가이자 광운대학교에서 한국영화 및 문화이론을 가르치고 있는 교수로, 대종상, 백상예술대상에서 자문 위원을 지냈으며, ‘상처의 응시’는 그의 두 번째 비평집이다. 책은 1부, 2부, 3부로 구성되며, 몇몇 영화 작품을 분석하는 것으로 시작해 작가와 미학적 분석으로 확장, 그리고 나아가서는 사회적 함의가 명확한 영화의 특징을 강조하며 책을 마무리하고 있다.


1부에서는 작품론에 집중하여 우리가 한국 영화에서 주목해야 하는 작품들을 개별적으로 분석하고 있는데, 독립영화로서 46개의 상을 수상했던 <벌새>(김보라, 2018), 대중성의 측면에서 성공적이었던 <극한직업>(이병헌,2019), 인디 다큐멘터리 <내 친구 정일우>(김동원,2017)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영화가 등장한다. 이후, 2부 ‘작가론과 영화미학’ 부분에서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 세계를 분석하고, 정성일 평론가의 비평집을 통해 천만영화의 경향성의 변화에 대해 다루고 있다.


또한, 영화 내에서는 어떠한 형태로서 맥락이 만들어지는가에 대한 미학적 분석을 내놓다, 뒤이어, 3부에서는 영화의 매체적 특성을 강조하여, 영화가 담고 있는 바이러스 사회, 실제 사회와 영화의 상관 관계와 에로티시즘에 대해 분석한다. ‘영화라는 거울에 비친 세상’이라는 부제와 어울리게 사회적 키워드와 영화를 함께 고찰하여 영화는 시대를 어떻게 담고 있는가를 분석한다.


저자는 서문에서 비평가는 감독이 조율하여 담은 캐릭터들과 세상의 상처를 들여다보고 사람들에게 이를 전달하는 역할을 수행해야한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좋은 영화란, 영화 속의 상처와 현실에 놓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상처의 조화를 도모하여, 잘 조율해내는 영화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책을 읽으며 첫째로 인상 깊었던 구절 또한, 이 부분에 있었는데 비평가란 '상처를 잘 응시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저자의 말에서 평소 저자가 어떠한 관점에서 영화를 바라보고 해석하고 있는가에 대해 이해한 후에 책을 감상할 수 있어 좋았다. 개인적으로는 영화는 단순히 엔터테인먼트적 요소, 오락성으로 흥행하는 것도 좋지만, 사회적 현상을 반영하고 메시지를 전달해야만 하는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기에, 특히나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비평문을 하나 소개해보자면 영화 <벌새>에 대한 글이다. 저자가 앞서 주장한 ‘비평가로서의 태도’가 가장 잘 드러나 있는 비평문이라고 느껴졌다. 저자는 <벌새>를 통해 자신의 상처를 직시하게 되었으며, 그 시대의 상처에 대한 응시가 적절하게 이루어졌고, 상처를 응시하는 고통을 치열하게 견뎌냈다고 평가한다.  


영화의 배경은 1994년이다. 김일성의 죽음과 성수대교의 붕괴와 같은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했던 1994년. 그리고 주인공인 은희에게는 언제나 가부장적인 아버지와 오빠로부터의 폭력, 유일한 친구였던 영지 선생님이 죽는 사건이 일어난다. 저자는 성수대교가 근대화와 가부장제를 의미하며, 이러한 성수대교의 붕괴, 가부장적 폭력을 행사하는 아버지와 오빠의 눈물을 통해 질서들이 붕괴되고 변화할 것임을 뜻한다고 보았다.

하지만, 동시에 성수대교의 붕괴는 은희에게 '가장 의지하던 자의 죽음'이라는 상처를 새긴다. 그 고통을 안고도 은희의 세계는 계속 확장되어 간다. 어린 은희의 시선을 통해 우리는 이런 고통스러운 장면을 직시하고, 직시함으로서 소화해낸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벌새>와 이 책은 그 순간이 '신기하고 아름답다'고 말한다.


매일의 투쟁이 아름다움의 구성요소라면, 세상의 아름다움은 사실 고통과 상처의 총합이겠다. 그리고 이를 소화해내려면 상처를 들여다보는 것부터 시작이다. 저자는 영화의 주인공은 자신의 상처가 고통스럽더라도 적극적으로 직시하여 이겨내기에 매력적인 서사로 존재할 수 있으며, 감상자들 또한 영화를 통해 상처를 직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영화를 볼 때 우리 모두는 각자의 감상을 가지고 나올 뿐 아니라, 비평가와 리뷰어로서의 역할은 우리에게까지 확장되어 왔다. 그렇기에 우리도 영화를 통해 우리와 타자의 상처를 응시하며 소화해낸다. 영화를 보는 동안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고통을 캐릭터의 상처를 통해 응시하게 될 것이며, 찰나의 고통과 위로를 넘어 삶은 결국 고통이 있기에 아름다움을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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