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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굴꾼 Dec 03. 2024

브런치 글을 삭제했다-브런치 글을 살렸다

일반적으로 1000자 내외의 글이 올라오는 브런치답지 않게 나는 한 편의 글을 기본적으로 5천자 이상 쓰는 편이다. 특히 훌륭하거나 느낀 것이 많은 박물관일수록 글은 점점 길어진다. 2024년 12월 3일자 발행 예정이었던 아이제나흐 바흐 박물관 또한 무척 특출난 박물관이었고 약 12000~14000자 사이의 글이 완성되어 있었다.


글을 마감하자마자 발행 버튼을 눌렀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브런치북에 발행해야 하는 글을 시리즈가 아닌 개별 글로 발행해버린 것이다. 브런치 작가라면 다들 알 불편함 첫 번째, 브런치는 개별로 발행한 글을 시리즈에 끼워넣는 것을 불허한다. 발행을 하고 나면 다른 시리즈로 바꾸는 것이 불가능하고, 글을 통째로 복사 후 새로운 탭에 붙여넣기를 해서 시리즈로 소속을 바꿔 발행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미 나는 몇 차례 저지른 실수였고, 이번에도 발행취소를 해서 임시저장글 탭으로 옮겨놓은 다음 내용을 긁어서 다른 탭으로 붙여넣어야겠다 생각하고 있었다.


문제는 내가 삭제 버튼이 발행취소 버튼인 줄 알았다는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삭제하시겠습니까?' 라는 질문에 '네' 를 누르자 내 14,000 자는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듯 허공 속 마치 물이 증발하듯 스르르 사라져버렸다. 눈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임시저장글에도, 예약발행글에도 없고 휴지통을 찾아헤맸지만 글을 찾지 못했던 나는 완전히 새파랗게 질려 브런치를 마구 뒤졌다. 메모장 같은 데에 쓰다가 브런치에 옮기는 식으로 글을 썼더라면 괜찮았을 텐데, 브런치로 글을 복사 후 붙여넣으면 서식이 망가질까봐 잘 그러지 않았던 것이다. 머리가 완전히 하얘졌다. 패닉이었다. 순간적으로 숨이 막혀오고 주위 소리가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브런치 복구' '브런치 삭제 취소' '브런치 삭제 살리기' '브런치 글 복원' 등 사방으로 복구법을 찾아다녔지만 다들 새로 썼다는 이야기뿐이었다. 7시간 내로 글을 새로 쓰지 않으면 연재 약속을 어기게 되는 상황이었다. 독자들께 뭐라 이야기해야 하나 하는 마음에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웨이백머신 데이터라도 찾아볼까, 방금 삭제한 글을 저장해두는 코드가 있지 않을까, 브런치 서버 해킹이라도 해볼까 하는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그때 머릿속에 생각이 스쳤다. 글을 올리고 삭제한 지 5분도 채 지나지 않았기에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트위터 같은 데서도 내가 어떤 게시물을 확인한 뒤 그 사람이 글을 삭제하더라도, 새로고침을 하지 않으면 나는 여전히 그 삭제된 글을 볼 수 있다. 그럼 서버에서도 마찬가지지 않을까? 내가 글을 삭제한 페이지에 가서 뒤로가기를 누른다면 글이 잠깐 정도는 살아있지 않을까? 아직 그 데이터가 안 날아가지 않았을까? 그런 실낟같은 희망을 가지고 뒤로가기를 미친듯이 눌렀다. 익숙한 바흐 초상화가 보였다. 그 아래 내 글이 전부 다 살아 있었다. 할렐루야,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을 믿지조차 않지만 다시 고생을 할 필요가 없다니 눈물이 날 정도로 기뻤다. 혹시라도 서버가 새로고침을 할까봐 겁내며 글을 전부 긁어 다른 탭으로 옮겼다. 그리고 발행했다. 구원받은 기분이었다. 패닉은 사라지고 손도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몸에 힘이 쭉 빠졌다. 다시 삭제된 글이 있는 탭으로 가서 새로고침을 누르자 '존재하지 않거나 삭제된 글' 이라는 팝업이 떴다.


어쨌든, 이 글을 올리는 것은 혹시나 브런치에서 글을 나처럼 잘못 삭제한 분들을 위해서다. 살릴 수 있는 방법 하나, 나처럼 뒤로가기를 눌러 글이 살아 있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방금 전 살펴본 결과, 한 가지가 더 있다. 내가 예를 들어 글을 3편 이미 발행해 놓았고, 4편을 올려야 하는데 4편을 잘못 올려서 삭제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브런치에서는 "https://brunch.co.kr/@사용자 이름/지금까지 내가 올린 글 수"로 URL을 생성한다. 잘못 올려 삭제한 글을 4-1편이라고 하고, 다시 삭제한 글을 복사해 올린 글을 4-2라고 하자. 이랬을 때 4-1의 URL은 @사용자이름/4로 끝나게 되고, 4-2편은 @사용자이름/5로 끝나게 된다. 그럼 삭제한 글의 URL을 바로 주소창에 입력하면 어떻게 될까? 삭제된 글이 그대로 검색된다. 그러니 내가 삭제한 글 이전에 발행한 글과 이후에 발행한 글의 URL 끝자리를 보고, 삭제된 글의 URL을 알아낸 뒤 주소창에 검색하면 죽은 글을 살릴 수 있다! 이상, 나처럼 브런치 글을 의도치 않게 삭제해 버린 브런치의 모든 작가들을 위한 소소한 팁 공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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