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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철희 Oct 02. 2024

<인사이드 아웃>을 보고 <마징가 Z>를 떠올리다

<인사이드 아웃>

피트 닥터 감독의 픽사(Pixar)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은

우리 머릿속에 있는

“기쁨,” “슬픔,” “소심” 등의 이름을 가진 여러 감정이

상황에 따라 우리를 조종한다고 설정한다.

지구상의 모든 인간에게,

나아가 영화가 끝날 때 나오는 쿠키에 등장하듯

개와 고양이 등 모든 생명체에게 적용되는 이 설정에 따르면,

우리는 “기쁨이”가 머릿속에 장착된 제어판을

장악하고 조종하면 기쁜 감정을 느끼고,

“슬픔이”가 제어판을 차지하면 우울한 기분에 젖게 된다.



<인사이드 아웃>은

제어판을 장악하는 감정이 툭하면 바뀔 수 있도록

사춘기라는 예민한 시기에 접어든 라일리를

주인공으로 삼는 영리한 선택을 한다.

그러고는 겨울이면 빙판이 많이 생겨

좋아하는 아이스하키를 맘껏 할 수 있는 지역인 정든 미네소타에서

적응하기 쉽지 않은 낯선 샌프란시스코로

라일리를 이사 보내면서

감정의 급변을 한층 더 경험하게 만드는 것을 통해

이야기를 쉽게 풀어가려 든다.



<인사이드 아웃>을 개봉 당시에 봤을 때 내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시인과 촌장”의 노래 〈가시나무〉였다.

조성모가 리메이크한 버전으로 많이 알려진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로 시작되는 그 노래 말이다.

라일리의 머릿속에 있는 기쁨이도 라일리의 감정이고

슬픔이도 라일리의 감정이다.

그러니 샌프란시스코로 이사한 라일리의 머릿속에는

본부에 체류하는 감정의 수대로 “다섯 명의 라일리”가 있다.

다른 캐릭터의 복잡한 머릿속에 보이듯,

라일리가 성장할수록 감정이 더 풍부해짐에 따라

“라일리의 머릿속 라일리”는 더 많아질 것이다.

그 많은 감정들이 제어판을 차지하려 들기 시작하면

우리는 잡념 때문에 산만해지면서

이도저도 못하는 스트레스에 휩싸일 것이라는 생각,

이게 내가 <인사이드 아웃>을 처음 보고서 했던 생각이다.

그때 나는 이 영화를 재미있는 설정을 통해

인간의 심리에 대한 통찰을 주는 영화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 글을 쓰려고 영화를 다시 보면서는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됐다.

큰 존재의 머릿속에 있는 작은 존재가 큰 존재를 조종한다는 설정에서

<마징가 Z>를 떠올린 것이다.

너무 옛날 작품이라 이 추억의 일본 애니메이션을 모르는 분이 있을 텐데,

그런 분은 아마도 <그레이트 마징가>와 <그랜다이저> 같은 후속작도 모를 것이다.

그리고 거대한 로봇과 거기에 탑승한 조종사가

일심동체 비슷한 존재가 돼서

대부분이 거대 로봇인 적과 싸우는 장르의 초창기 히트작인

이 작품의 영향을 받아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로버트 태권 브이>도 잘 모를 것이다.

그런 분들에게는 역시 이 작품의 영향을 잔뜩 받은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퍼시픽 림>을 떠올려 보라고 얘기하고 싶다.



그렇다고 <인사이드 아웃>과 거대로봇 장르의 설정이 똑같은 건 아니다.

거대로봇 장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거대로봇을 조종하는 조종사의 안위다.

그 장르에서는 조종사만 무사할 수 있다면,

가슴은 아프겠지만,

로봇을 포기하는 극단적인 조처도 취할 수 있다.

반면, <인사이드 아웃>에서 중요한 것은

감정들의 조종을 받는 라일리의 행복이다.

그 행복을 위해 기쁨이와 슬픔이는 미지의 세계로 모험을 떠나고

본부에 남은 감정들도 어떻게든 본부와 두 감정을 무사히 지키려 최선을 다한다.



아는 사람은 다 알 듯,

픽사는 1995년에 세계 최초의 장편 CG 애니메이션인

<토이 스토리>를 만든 회사다.

그로부터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픽사의 영화들은

온갖 디지털 영상기술이 총동원된 CG로 아름답고 현란한 화면들을,

실사영화에서는 보여주기 어려운 비주얼을 구현해 왔다.


그런데 <토이 스토리> 시리즈를 비롯한 픽사 영화들이 성공한 데에는

비주얼 못지않게 탁월한 시나리오가 큰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CG와 실사의 경계가 갈수록 흐릿해지고

CG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회사들의 수가 늘어나면서

비주얼이 더 이상 픽사의 독보적인 장점이 아닌데도

픽사 영화가 나올 때마다 흥행하는 것은

기발한 설정을 바탕으로 공들여 가다듬은 이야기를

찰떡같이 어울리는 비주얼과 함께 들려주는 탁월한 시나리오 덕분이었다.



<인사이드 아웃> 역시 픽사 시나리오의 강점을 보여주는 영화다.

우리의 심리에 대한 <인사이드 아웃>의 설정은 기발하다.

우리가 살아가며 겪는 모든 일을 다 기억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바탕으로

“핵심 기억”과 “장기기억 저장소”와 “기억 쓰레기장”을 설정하고

그걸 아기자기하고 인상적인 비주얼로 보여주는 부분에는

고개가 절로 끄덕거려진다.


라일리가 어렸을 때 상상으로 빚어낸 친구인 빙봉도

“역시 픽사의 창의력”이라는 감탄사가 나오는 캐릭터다.

솜사탕 몸통에 코끼리 코, 고양이수염 등이 종합된 존재인 빙봉을

어린아이의 천진한 상상력이 아니면,

그리고 “픽사의 시나리오 집필진”이 아니면 그 누가 만들어낼 수 있겠는가?

그리고 현실의 경험과 기억이 영역을 급격히 넓히면서

뇌를 장악하는 시기인 10대에 접어들면

빙봉으로 대표되는 순수한 상상의 세계는

사라지는 운명을 맞을 거라는 것을

그 누가 픽사처럼 시각적으로, 감동적으로 보여줄 수 있겠는가?



<인사이드 아웃>에서 내가 특히 좋아하는 장면은 두 개다.

하나는 기쁨이와 슬픔이가 길이 다 끊겨 막막한 상황에서

본부로 돌아갈 방법을 궁리해 성공을 거두기까지 과정이다.

픽사 애니메이션에서

위기에 몰린 주인공들이 위기를 모면할 수 있게 해주는

절묘한 방법들을 보면서 항상 감탄을 금치 못했었는데,

픽사의 기지는 <인사이드 아웃>에서도 여전하다.

상상 속 남자친구를 무한히 복제하고

트램펄린을 이용하며

용접 마스크까지 등장시키는 아이디어를 칭찬하지 않으면 무엇을 칭찬하겠는가?



그런데 정말로 감탄한 장면,

자꾸 생각하고 곱씹어 보는 장면은 꿈 제작소 장면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하나같이 꿈을 꾸는 존재이다.

꿈은 우리가 의식적으로는 생각하지 못한 시나리오로

때로는 우리를 두려움에 떨게 만들고

때로는 우리를 흐뭇하게 만든다.

결국 우리 모두는 날마다

(무의식적으로) 영화를 제작하고 연출하는 영화인이다.

“우리의 꿈은 우리가 겪는 일들을 소재로 삼은

에피소드들을 영화처럼 제작해 상영하는 영상이다”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그걸 그럴듯한 내용으로 보여주는 것은

어쩌면 픽사 애니메이션만이 가능한 일 아닐까?


<인사이드 아웃>은 생각할 거리와 함께

“마냥 부정적으로만 여겨지는 슬픔도

때에 따라서는 우리에게 유익한 감정이 될 수 있다”는

깨달음도 주는 좋은 영화이지만,

약점이 없는 영화는 아니다.

처음 볼 때는 설정의 기발함에 감탄하느라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이번에 다시 보니 라일리의 가출이 너무 간단하게 해결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러닝 타임을 생각하면,

그리고 지금도 꽤나 복잡한 설정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해가 되기도 하지만

영화의 클라이맥스에 해당하는 위기를

너무 간단히 해결해 버리는 건 사실이다.

우리의 기억이 가진 심각한 결함인

“기억의 왜곡” 같은 문제들도 건드리지 못한다.


또 다른 약점은 “머릿속 감정이 우리를 조종한다”는 설정에서는

피할 길이 없는 약점이다.

영화에서는 기쁨이나 슬픔이 등의 감정들도 감정을 느낀다.

“감정에도 감정이 있다”는 설정은

“그 감정들의 머릿속에도 그 감정들을 조종하는 감정들이 있다”는

설정을 가능케 한다.

이 설정에 따르면 우리는 마트료시카(러시아 인형)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이다.

“내 속에는 내가 너무도 많이” 있는데

“너무도 많은 내 속에도 또 다른 내가 있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인사이드 인사이드 아웃> 같은 작품도 만들 수 있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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