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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수은 Jun 08. 2024

정보의 쓰나미에서 쓸려 내려가지 말길

♫어거스티 디 - 해금

 첫인사 이후로 무슨 글을 써야 할까 오랜 고민을 했다. 내가 바라보는 세상을 얼마나, 어떻게 표현해야 가장 잘 와닿을 수 있을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모두에게 가장 친숙할 음악으로 다가가 보고자 했다. 90년대부터 20년대, 발라드부터 아이돌 음악까지 다양한 음악을 아끼는 사람으로서 매거진의 첫 글을 펴낸다.



https://youtu.be/iy9qZR_OGa0?si=yXKIVT8qF-XMrA35


 처음으로 소개하고자 하는 음악은 어거스트 디의 '해금'이라는 곡이다. 어거스트 디는 방탄소년단 슈가의 두 번째 활동명이며, 해금은 믹스테이프를 포함한 세 번째 앨범, <D-DAY>의 곡이다.


 처음 제목을 들었을 때는 악기 해금을 말하는 건가 했다. 이전의 대취타라는 음악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보였기 때문인데, 역시나 음악에 해금이 사용되었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제목의 해금은 단순한 악기 해금을 말하는 것이었을까? 그 정답은 곡 설명에서 알아낼 수 있다.


해금의 곡 설명

<D-2>의 타이틀곡 '대취타'에 이어 가사에 등장하는 해금 사운드를 활용한 힙합 장르의 곡이다. 국악기 '해금(奚琴)'과 '금지된 것을 푼다'라는 '해금(解禁)'이라는, 중의적 표현을 통해 자유롭게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일상과 사회에서 여러 제약과 제한에 얽매여 살아가는 사람들을 향해 '자유'라는 화두를 던진다.

 

 그렇다. 내가 처음에 제목을 보고 떠올렸던 해금은 절반의 정답이었던 것이다. 사실 내가 이 곡을 가장 처음으로 다루고 싶었던 이유도 이 곡이 다루고 있는 내용 때문이었다. 금지된 것들로부터의 해방,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나는 살면서 무언가에 얽매여 있다는 것을 크게 느끼지 못했다. 내가 살아온 날이 적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마냥 그런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 것 같았다. 그리고 곡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가사에서 알 수 있다.




해석들은 자유, 개소리는 아웃
표현들의 자유, 어쩌면 누군가의 죽음 사유

 곡의 초반에 한 번 등장하고 다시 등장하지 않는 가사이다. 하지만 이 가사를 보고 많은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유명인들의 안타까운 소식이 종종 뉴스에서 전해질 때 우리는 이야기한다. 나쁜 평가들과 이유 없는 비난들 때문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비단 유명인들만의 이야기일까? 우리는 생각보다 쉽게 말을 뱉는다. 그 말인즉슨, 생각보다 쉽게 남의 마음에 상처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무심코 하는 표현이 내 주변 사람을 몰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 보게 된다.



각자의 취향조차 이해들을 못 하는 불행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이 노랜 금지된 것을 푸는 것뿐이지

 각자의 취향조차 이해들을 못 하는 불행한 시대라는 말이 격하게 와닿았다. 특히 요즈음의 소셜미디어를 보며 가장 크게 느끼는 점 중 하나다. 인터넷에서는 유독 취향과 주관을 '이해'의 영역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보이는데, 나는 그것이 갈등의 큰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취향과 주관은 사실 이해의 영역이 아니다.


 그렇지 않은가? 우리는 개개인마다 다른 성향과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토록 다른 우리가 전혀 다른 사람의 취향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에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취향'이나 '주관'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개인적인 견해라는 것을 이해의 범위에 두게 되면 비난하거나 비판하게 될 수밖에 없다. 남의 주관을 이해하려고 드는 만큼, 이해하지 못하면 나의 주관을 이해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취향이나 주관은 이해시키고 가르쳐야 하는 과목이 아님에도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처럼 구는 모습이 종종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허나 자유와 방종의 차이쯤은 부디 구분하길

 자유와 방종의 차이라는 말은 선생들에게 하는 말일 것이다. 방종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정의는 '제멋대로 행동하여 거리낌이 없음'. 각자의 취향을 이해하지 못하는 시대, 금지된 것을 푼다는 것은 그들과 똑같이 행동하라는 말이 아니다. 자신의 자유를 명분으로 남의 자유를 침해하게 된다면 그것은 자유가 아닌 방종에 불과하다. 표현의 자유라는 말이 악플러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우리는 자유를 올바른 곳에, 올바르게 사용해야 할 의무가 있다.



쏟아지는 정보들은 상상의 자유들을
금지시킴과 동시에 사상의 통일성을 원해
꽤나 머리 아픈 각종 노이즈는 눈을 가리고
이제는 생각의 자유조차 범해
각종 논란들은 판단들의 혼란들을
야기시키고 또 쉴 틈 없이 생산되네, uh
과연 우릴 금지시킨 건 무엇일까?
어쩌면은 우리 자신 아닐까?

쏟아지는 정보들이 사상의 통일성을 원한다는 것은 최근 크게 실감하고 있다. 아마 사상을 통일하는 방법으로는 정보의 재생산을 고른 것 같다. 누군가의 입을 거치고 거치며 정보는 퇴색되고, 사람들은 거짓된 정보에 하나 되어 무언가를 물어뜯는다. 여러 곳에서 다발적으로 쏟아지는 거짓 정보들은 진짠가? 싶은 마음을 우리에게 심어주고, 우리는 진실을 볼 눈을 잃는다.


  그런 의미에서, 우릴 금지시킨 것은 우리 자신들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눈과 귀가 이미 가려진 줄도 모르고, 타인의 눈과 귀를 가리려고 하니 말이다.



자본의 노예, 돈들의 노예
증오심과 편견 혐오의 노예
유튜브의 노예, 플렉스의 노예
이기심과 탐욕이 미쳐 날뛰네
눈 감으면 편해, 모든 게 뻔해
이득에 따라서 뻔히 갈리는 견해
시기와 질투에 다들 말야 눈들이 머네
서로가 서로에게 족쇄를 거는 것도 모른 채

 우리의 눈과 귀를 가리는 대표적인 것들이다. 돈, 편견과 혐오, 소셜미디어는 우리의 정상적인 사고를 방해한다. 남을 시기하게 만들고, 따라 하게 만든다. 그렇게 따라한 콘텐츠를 누군가가 보고 질투한다. 시기와 질투만 퍼진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혐오 또한 소셜미디어를 통해 쉽게 퍼진다.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고, 보고, 공유했던 것들이 사실 우리를 망치는 것이다. 남이 나에게, 내가 남에게 족쇄를 걺으로 인해서 말이다.



정보의 쓰나미에서 쓸려 내려가지 말길
우린 자유와 방종의 차이쯤은 모두 구분하니

 곡은 말하고자 했다. 정보의 쓰나미에서 쓸려 내려가지 말길. 나도 함께 말하고 싶다. 쏟아지는 정보들에 휩쓸리지 말았으면 한다. 우리는 모두 생각을 할 수 있고, 자유와 방종의 차이를 구분할 수 있다. 과격하고 흥미로운 말들에 속지 말고, 동요하지 말자. 많이 사고하고, 바라보다 보면 이상함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마무리하며

 당신이 노래를 듣지 않았어도 좋다. 나는 노래를 소개하고자 하는 마음보다는, 가사를 나누고 싶다는 마음으로 이번 글을 써냈으니 말이다. 다만, 가사와 나의 글을 읽고 느끼는 바가 있었으면 한다. 당신의 생각과 일치하면 좋겠지만, 아니어도 상관없다. 결국 노래의 가사도, 이 글의 내용도 주관이라면 주관이기 때문이다. 이해되지 않는다면 이해하려고 들지 말고, 당신의 생각도 나눠주길 바란다. 오해는 말아라. 당신의 의견을 이해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모두의 이야기를 듣고 싶고, 배우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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