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꿈이었다면
꿈을 꿨다. 하지만 아주 두렵고, 무서운 꿈이었다.
윤 대통령이 밤 10시 27분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한다.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한다. 이 모든 건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한 것이다.”이라며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지금 이거 맞는 거야? 꿈 아니야? “
어안이 벙벙해진 나는 꿈같은 현실 속에서 일하고 있었다. 방금 전 오후 10시에 병원에 출근했기 때문이다. 환자를 보고 왔는데 속보로 날아든 '비상 계엄령' 소식은 눈을 씻고 다시 봐도 믿기지 않았다. 2024년 민주주의 대한민국에서 이게 꿈이 아니라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생각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지금 응급실에서 일하고 있으면 되겠지? 계엄사령부 군인들이 밖에 배치된다고 하네. 그럼 환자들은 어떡하지? 치료받고 집에 가실 수 있겠지? 우리는 어떡하지? 마치고 집에 갈 수 있겠지? 집에 있는 가족들은 어떡하지? 아니 이게 뭐 어떻게 되는 거지? 영화에서만 보던 상황 아니야?"
내 머릿속에는 온통 물음표만 가득해졌다.
무서운 말들은 계속 속보로 쏟아져 나왔다. 지금부로 국회, 지방의회, 정당 활동은 금지된다고 했다.
"뭐야 저걸 진짜 한다고?"
비상계엄 : 국가가 전시나 내란, 또는 그에 준하는 위기 상황에서 국민의 안전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발동하는 특별한 법적 조치. 이 경우 정부는 군대나 경찰의 권한을 확대하고, 특정한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다.
1. 군사적 통제 강화: 군대가 주요 지역에 배치되어 치안 유지와 질서 회복을 담당.
2. 기본권 제한: 표현의 자유, 집회의 자유, 이동의 자유 등이 제한.
3. 검열 실시: 언론과 정보에 대한 검열이 강화되어 정부에 비판적인 내용이 제한.
4. 비상 법원 운영: 특별한 법원이 설치되어 신속한 재판이 이루어질 수 있음.
즉시 계엄사령부가 만들어졌다. 계엄사령관 박안수 대장은 포고령 1호를 발표했다.
포고령 : 계엄사령부가 국가 비상사태 시에 발표하는 법적 명령으로, 특정한 권한을 부여받은 군사적 지휘체계에 의해 시행됨. 포고령은 일반적으로 정치적 활동, 집회, 언론의 자유 등을 제한하는 내용을 포함.
특히 발표된 내용 중 '처단한다'라는 내용은 사회에 큰 공포감을 조성했다.
하지만 국민적 동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비상계엄은 당장 해제 되어야 했다. 그 방법은 국회의 요구가 있으면 가능했다. 국회가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계엄 해제를 요구할 경우, 대통령은 이를 수용해야 한다.
그걸 알았던 윤대통령은 이를 필사적으로 막으려고 했다. 명령에 의해 군과 경찰이 신속하게 움직였다. 경찰은 현재 계엄 명령이 떨어졌다는 이유로 국회의사당 입구를 봉쇄했다.
계엄사령부 소속 군대는 헬기까지 동원했다. 국회의사당 하늘 위로 여러대의 헬기가 지나갔다.
헬기에서 내린 특전사 부대가 국회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명령을 받고 움직이는 군인들과 그들을 막으려는 시민들과의 대치가 시작됐다. 국회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군 무장병력들은 비상계엄 해제 하려는 국회의원들을 막기 위해 국회 본회의장으로 진입을 시도했다.
보좌진과 시민들은 맨몸으로 군인들의 본회의장 진입을 막았다. (위에 하얀색 연기는 소화기 분말)
그 덕분에 12/4 오전 1시경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가결되었다.
그리고 12/4 오전 4시 25분, 윤석열 대통령은 국회 요구를 수용하여 계엄을 해제했다.
6시간 만에 시민의 기본권이 복원되고, 사회가 정상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하지만 정부의 신중하지 못한 판단은 우리들의 가슴속에 뼈아프게 남았다. 2024년 12월 3일 오후 10시 27분은 대한민국 아픈 역사가 되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절대 있어서는 안 될 뼈아픈 사건으로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밤 동안 아주 무섭고, 두려움에 떨어야 했던 시간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지금까지 다친 사람에 대해서는 나오지 않았다. 시민들, 국회의원들, 보좌진들 그리고 명령에 의해 수행해야 했던 군인들까지 모두가 다치지 않고 마무리되었다. 앞으로도 우리 국민 모두가 다치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밤 근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못 잤지만, 이날 깨어있었던 국민들 모두가 밤 잠을 설쳤다. 어쩌면 그날 가장 평온했던 사람은 오후 10시 27분 전에 잠들었던 사람이다. 왜냐하면 꿈에서라도 '비상계엄'이란 상상 조차 하지 못했을 거니까.
한 밤 중에 있었던 '비상계엄'이 차라리 꿈이었다면 어땠을까. 그래서 꿈 해몽을 찾아보는 아침이 되었더라면 어땠을까. 비상계엄은 해제가 되었다. 하지만 사회적 혼란은 계속되고 있다. 앞으로 대한민국의 방향이 긍정적으로 나아가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