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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타다..랄랄라 산티아고길(29)/긴급,계획변경

그러나 여기까지..

by 호히부부

9월 중순 프랑스 생장 피에르 드 포트에서 시작한 산티아고 프랑스길 순례를 한달여만에 폰페라다에서 마무리 하기로 결정했다.

총 800km 산티아고 순례여정 중에 어느새 214km만을 남겨두고 있지만

더이상은 호의 무릎상태가 순례를 지속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판단을 오랜 고심끝에 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순례 시작날, 산티아고 순례길 구간중에 가장 힘들다는 피레네산맥을

장장 11시간에 걸쳐 하루만에 넘고(산맥 중간에 있는 숙소 예약이 다 차버린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연달아 이어진 경사도 심한 며칠간의 코스들이

무릎에 단단히 무리를 줬나보다.


한국에서 하필 순례시작 3주전부터 갑자기 뒷무릎 당김 증상이(몇년전부터 있던 증세지만)

심해지긴 했으나 그러다 며칠 지나면 좋아질 것이라 낙관하고 순례를 떠났다.


그래서 연박도 더 자주 하고 때때로 버스 이용도 해가며 느리게 순례를 이어갔음에도 불구하고(총 45일간 예정으로)누적된 피로가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그래도 평지는 좀 괜찮은데 돌자갈길이나 경사도 구간을 걷게 되면 급 피곤해진 나머지 다리가 균형을 잃고 절뚝였다.


12년 전 산티아고 길을 처음 걸은 후, 다시 한번 그 길에 설 날을 우리도 모르게 마음 깊숙히 품고 살았던 것 같다.

그렇게 12년만에 다시 선 길에서,

마치 삶의 나침판같은 노란표지석을 기쁘게 의지하며 갈색 평원의 가을 산티아고길을 원없이 걸어보고 싶었다.

40년 결혼생활의 지나가버린 추억과, 앞으로 다가올 희망을 길 위에 새기면서.




많이 아쉽지만, 그러나 여기까지 이 정도로라도 무사히 잘 걸어온 것에 감사한다.

28일간 거쳐온 까미노길 위에서, 다시는 오지 않을 그리운 추억들을 가슴 절절이 되짚었고,

노년의 나이에 들어서서 맞이하는 우리들 시간을

희망으로 그리며 충만했던 시간들에 감사한다.


순례여정 중 약 3분의 2쯤 지나온 거리인 아스트로가에서부터 시작된 고민이 (처음으로 하루 두번 버스를 타고 어렵사리 도착한 날)

며칠을 지난 끝에 폰페라다에서 결정났다.


어찌 할 바를 몰라 갈팡질팡하던 그간의 과정을 아는 딸아이가 우울한 엄빠에게 보내온 문자이다.


넘 큰 결정이지만 정말 잘하셨네요!!

뭐든 몸상태를 보면서 도전해야 다음을 기약할 수도 있고 즐겁게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ㅎㅎ (저도 운동하며 매번 혼자 생각하는 거 ㅋㅋ) 까미노는 꼭 두 발로 다 긴 시간 완주하는게 의미가 있는게 아니라 내 몸이 얘기하는 각자의 상태들을 겸손하게 받아들이면서 산티아고를 들어가는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엄빠는 이미 오래 전부터 너무너무 멋진 도전을 하셨고,

지금의 결정은 앞으로를 위한 더 큰 결정인만큼

멋지게 마무리하고 남은 기간은 또 새롭게 좋은 동네에서 보름살기 하며 즐거운 시간 보내다 오세요!!!!


때가 때이니 만큼 딸아이의 문자를 읽는데 마음이 울컥.ㅎㅎ

자식의 격려에 힘입어 새롭게 마음을 재정비하고

폰페라다에서 산티아고까지 힘차게 버스로 건너뛰어 갔다.

우리 걸음으로는 근 2주 이상이 걸릴 거리인데 3시간 반 걸려 도착했다.




우연의 일치이지만,

우리가 순례를 멈춘 도시 폰페라다는 중세시대에 산티아고, 성 야고보의 무덤을 향하던

수많은 순례자들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고 돌봐주는 임무를 맡은 템플기사단(기사 수도회)의 성이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어쩌다 순례 마지막 여정을 보내며 기사단의 보호를 느끼며 잘 쉬었다.



산티아고 순례자보호와 지역방어의 핵심 거점이었던 폰페라다 십자군 탬플 기사단의 성.


때마침 스페인 국경일이어서 무료입장




성벽에서 바라본 폰페라다 시가지 풍경



호야, 무릎아~~ 그간 애썼다^^


템플기사단 님도 감사해요^^


우기를 대비해 열씨미 지고다니던, 한번도 안쓴 우천시 대비 물품들을 (눙물을 머금고^^) 알베르게에 기증
때마침 만난 한국분이 새 우비를 들고 고맙다며 귀하디 귀한 참이슬 소주를 주셨다^^
캬~ 얼마만인가! 우리의 쏘맥아~^^


가자!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성 야고보 성인을 만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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