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수업을 끝내고 얼른 아이들 교실청소를 닥달한 후, 조퇴하여 집으로 왔다. 집에서 남편과 아이들을 만나 얼른 차에 태우고 부산으로 출발했다. 3주 전에 왔던 부산을 다시 왔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닌 가족들 모두와 함께. 생각해보니 우리 아이들은 올 설에 부산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 오곤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더랬다. 중간 중간 다른 도시에서 만나긴 했지만 부산까지 가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아이들도 설렘 가득이었는지 전날 (본인들의 가방) 짐을 싸지 못한 게 아쉬워 자기 전에 속닥속닥 작당모의를 했었다. 그러더니 오늘 아침 큰 아들은 평소보다 30분이나 일찍 스스로 일어나 새벽에 내 옆으로 와 안방침대에서 자고 있는 둘째를 흔들어 깨웠다. "(속닥) 일어나, 짐싸야지!" 평소엔 깨워도 한참을 침대에서 밍그적대는 딸도 벌떡 일어나 오빠를 따라 나서더니 가방 한 가득 이것 저것 짐을 가득 채운다.
그 조잘거림을 뒤로 한 채 아침을 준비하는데 갑자기 라면이 먹고 싶다고 했다. 당연히 나는 안된다고 했고, 그럼 부산 가는 길에 휴게소에서 라면을 먹어야겠다고 했다. 그래, 그 정도는 오케이. 그렇게 3시에 집에서 만나자며 아침 인사를 한 후 아이는 학교에 갔다. 3시 10분. 하교지도가 조금 늦어 약속보다 조금 늦게 집에 들어갔더니 나를 기다리던 큰 아이가 나를 반기며 제일 먼저 한 소리. "엄마, 내가 컵라면을 챙겨놨어. XX도 먹을까? 그건 엄마가 챙겨!!" 진라면 매운맛(소)을 야무지게 자기 가방에 넣어두고, 동생 것(진라면 순한맛(소))도 챙기라며 단단히 일러둔다. 어쩐지 귀엽고 야무진 그 고집에 일단 챙겨서 출발을 했다. 뭐 뜨거운 물은 어떻게 되겠지.
그런데 출발하자마자 라면타령이다. 얼른 휴게소에 가자고, 배고파 죽겠다고, 평소 그 소식좌가 갑자기 식탐을 부린다. 약 6시간을 내리 달려야 도착할 부산인데 출발하자마자 휴게소에 들르면 시간이 훨 걸린다는 것을 알기에 그 부탁은 쉬이 들어줄 수가 없다. 하지만 라면에 꽂힌 아들은 쉬지 않고 타령이다. 하아. 힘들었다. 결국 6시 즈음에 충주휴게소에서 아들의 부탁을 들어주어야 했다. 충주휴게소에 도착하기 전 갑자기 든 생각. 앗, 휴게소는 라면을 팔기에 또 컵라면 음식찌꺼기들의 처리가 어렵기에 뜨거운 물을 제공하지 않았던 것 같다. 휴게소 편의점에서도 컵라면을 본 기억이 없다. 큰일이다. 라면을 먹을 생각에 기분이 살짝 좋아진 아이를 설득해 본다. 아들아, 생각해보니 휴게소는 이러이러한 이유 때문에 뜨거운 물을 제공하지 않을 수도 있어. 만약에 그런 상황이라면 휴게소에는 라면을 파니 그걸 먹어도 되겠니? 다행히 아들은 좋다고 해주었다. 살짝 자고 일어나 컨디션이 좋아진 둘째딸도 오케이를 해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컵라면이 아닌 휴게소 라면을 사이좋게 나누어먹고 다시 출발할 수 있었다.
(그런데 TMI. 주문을 마치고 돌아본 곳에 '한강라면' 기계가 있었다. 우리 아이들은 한강라면이 더 취향이었을텐데. 이미 주문을 해버려서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다 먹고 편의점 과자 쇼핑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한강라면 기계 코너 안쪽을 보니 전자렌지와 뜨거운 물 정수기까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심지어 편의점에서는 컵라면도 팔고 있었다. 충주휴게소는 컵라면을 먹을 수 있는 곳이었다. 꼭 기억해두리다.)
충주휴게소에서 30분 가량을 보내고 다시 출발하여 도착한 부산은 어느덧 10시. 주전부리로 저녁 요기를 했음을 알기에(또 그러라고 하셨고) 간단하다고 하지만 푸짐한 밤상이 차려졌다. 내일은 또 토요일이라 늦잠을 자도 되므로 아이들의 취침시간에도 여유로웠다. 그렇게 앉아 있던 밤상에 또 '라면' 이야기가 나왔다. 이번엔 어른들의 '라면' 취향. 라면에 취향 이야기라면 보통 꼬들이파와 퍼진면파. 그리고 계란을 풀어먹느냐, 계란을 단지 톡 넣어 익혀(익힘의 정도는 다르겠지만) 먹느냐. 이렇게 이야기 한다. 그렇지만 오늘의 라면 취향 내용은 이것이었다. 순정라면파 vs. 요리라면파.
라면이 왜 라면이겠느냐, 그냥 봉지 레시피 그대로 면과 스프 딱 그것만 넣어서 간단히 먹는 것이 라면이 아니냐.
에이, 그래도 이왕 먹는거 더 맛있게 먹으면 좋지 않느냐, 야채도 팍팍, 시원하게 콩나물 넣어도 되고, 뭐 어떤 때는 해산물도 듬뿍 넣고 짬뽕처럼 만들어먹으면 나는 그렇게 맛있더라.
전자는 엄마, 후자는 아빠이다. 전자는 우리 남편, 나는 중도파다(둘다 매력적인 걸 어떻게 하나만 고르지..? 이왕이면, 하나만 골라보라지만 고를 수 없다. 사실 전자라고 하면 아빠가 매우 섭섭해할 것 같다.)
엄마가 아무리 본인은 순정파라고 평생을 외쳐왔지만 들어주지 않는 아빠 때문에 늘 요리라면을 먹어서 힘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이제는 그냥 포기하고 아빠가 외출을 하여 라면에의 자유권이 생겼을 때는 다른 어떤 요리도 하지 않고 그냥 깨끗한(?) 라면을 끓여 먹는다고 했다. 예전에는 계란과 땡초 정도 넣었던 것도 이제는 아예 다 필요없고 그냥 라면 봉지만 가지고 라면을 끓인다고 했다. 그리고 이제 아빠도 그런 엄마의 라면 취향을 존중하여 혼자 있을 때 끓여먹는 라면은 그러려니 한다고 하신다. (정말 몇 년 되지 않은 취향 존중. 그리고 아직도 함께 라면을 먹는 날은 고려되지 않는 순정라면)
라면 하나로 오늘 글이 완성되었다. 역시 라면은 라면.
갑자기 궁금해진다. 당신의 라면 취향은 어떠신가요?
1. 면취향 : 꼬들파 vs. 퍼진면파
2. 계란취향 : 풀어서 vs. 안풀어서
3. 요리취향 : 순정파 vs. 요리파
라면과 함께 라면 / 윤초록 글, 이희은 그림 / 노란상상
여기 라면에 대한 많은 것을 담고 있는 그림책이 있습니다. 라면은 우리 부엌에서 뗄레야 뗄 수 없는 어쩌면 누군가의 소울푸드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진 않을까 합니다. 생각보다 그 역사도 오래 되었더라구요. 라면에 대한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이 그림책. 여기서 한 번 생각해봅니다. 과연 나에게 라면은? 나의 라면 취향은 어떠한가? 그래서 오늘은 '라면'에 대한 글을 한 번 써보았습니다.
사실 고백하자면 오늘은 '라면'을 쓰고 이 그림책을 떠올렸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이 그림책으로 쓸 이야기가 하나 더 있었습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