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공식과 함께 새겨보는 추억공식
노는 게 좋은 사람. 재밌는 게 좋은 사람. 바로 나다. 우리 집 아이들과 함께 할 때도, 학교의 아이들과 함께 할 때도, 나 혼자 무언가를 할 때도, 일단 즐거워야 하고 재미있어야 한다.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 -독일 심리치료사, 롤프 메르클레
고로, 아무도 날 이길 수 없다.
우리 집 아이들과도 많이 즐기지만, 우리 교실 아이들과도 참 잘 즐기고 있다. 집 아이들과의 에피소드는 잠시 미뤄두고 교실 속 아이들과의 이야기를 풀어본다.
지금 6학년 2학기 수학 교과서 5단원에서 원의 둘레와 원의 넓이에 대해 배운다. 그 원리를 이해하고 공식을 익히게 하는 것이 이 단원의 일차적 목표이다. 물론 대부분의 아이들은 이미 그 공식을 알고 있고 문제를 풀 수 있다. 교과서에는 문제도 몇 개 없다. 원의 둘레를 배워야 하는 차시가 있는 날 아침, 출근을 하려는데 눈 앞에 가득 쌓인 귤들이 보였다. 이 귤이라는 놈은 관심을 가져주지 않으면 어느 한 구석에서 하얗게 변신을 하곤 한다. 감히 나에게 관심을 주지 않아? 삐뚤어질테다! 삐뚤어지기 전에 24개의 귤을 얼른 봉지에 담아 출근을 했다. 그리고 수학시간. 아이들과 교과서를 펼쳐 원의 둘레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문제도 풀었다. 시간이 남았다. 검은 봉지를 펼쳤다.
자, 지금부터 미션이다. 귤의 둘레와 반지름을 측정하고 그 관계를 다시 한 번 알아보아라. 모둠 아이들의 결과를 모두 비교해보거라.
활동이 끝나면 귤을 먹어도 좋다. 아이들은 신이 났다. 원주율은 3.14인데, 사실 측정이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언저리로 나오기도 하고, 어떤 아이는 2.5 아래로 나오기도 한다.
"선생님, 숫자가 너무 낮아요."
"저는 2.4가 나오는데요?"
"괜찮아. 이런 모오오오든 수치는 역대 수학자들이 수천번 수만번 했던 거야. 그 수천번 수만번의 수치가 모여서 지금 너희가 알고 있는 그 원주율이 나온거지. 그게 얼마라고?"
"3.14요!!"
"자기 귤로 잰 숫자랑 모둠원들 숫자 확인했으면 이제 귤 맛있게 까먹어, 선생님은 3.14 나오기를 기대하지 않았어. 이거 다 먹고 살자고 하는 거야."
"선생님, 맛있어요! 이 귤 어디서 산거에요?"
"우리 아빠가 사온 귤은 진짜 맛없던데, 이거 어디서 사셨어요?"
음?? 난 맛 없던데, 그래서 우리집에서 한참 있던건데, 후숙이 잘 된건가?? 그렇게 즐겁고 맛있는 원의 둘레 수업이 끝이 났다.
그리고 원의 넓이 어림하기, 원의 넓이 구하기 수업을 끝낸 다음 날. 할까말까할까말까 엄청 고민을 했었는데, 결국 전날 쿠팡프레쉬로 주문을 했다. 삼립호떡, 꿀호떡.
"선생님, 오늘 우유 안 마시면 안돼요?"
"너 아마 나중에는 먹고싶다고 할걸? 잘 챙겨놔."
그렇게 수학시간이 되었다.
자, 수학책! 오늘 어디 할 차례지? 문제 풀어야지. 문제 풀기 전에 우리 당 좀 채울까? 1인 1꿀호떡을 나눠주고 1모둠 1빵칼을 나눠주고 4조각, 8조각, 16조각... 원하는대로 잘라보고 놓아보고 만들어보고 먹어! 하고 돌아다녔다. 아주 신이 났다.
생각보다 꿀호떡의 빵이 단단해서 잘라 배치하는데 효과가 괜찮았다. 이리저리 조각을 맞추는 건 후다닥. 먹는 건 더 후다닥. 당이 채워지니 사랑한다는 말도 절로 나오더라.
"선생님, 사랑해요. 너무 맛있어요!" "선생님, 냉장고에서 우유 하나 더 꺼내먹어도 돼요?"
이런 활동을 한다고 원의 둘레를 구하는 공식이, 원의 넓이를 구하는 공식이 머릿 속에 팍 하고 박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원의 둘레를 구할 때 이런 걸 했었지, 원의 넓이를 구할 때 이런 것도 했었지. 아이들의 머리 속에 이 장면은 기억되지 않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원의 둘레, 원의 넓이의 공식보다 더 소중한 기억. 초등교사로서의 나의 '교육관'. 물론 학습적인 측면에서의 교육도 해야 하지만 나는 이런 게 더 좋은걸.
그치만 얘들아, (원의 둘레) = (원의 지름) X (원주율) , (원의 넓이) = (반지름) X (반지름) X (원주율) 이야. 내일 단원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