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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툰엄마선생님 Oct 29. 2024

잃어버린 애착인형

이제는 이별해야 할 때

 자기 직전 알게 되었다. 우리 둘째의 애착인형 고슴이가 사라졌다. 발레학원에서 돌아올 때까지만 해도 손에 꼭 쥐고 있었는데. 말을 걸며 같이 하하 호호 정답게 놀았는데, 이게 어디로 사라진 거지? 

  잠이 와서 눈이 거물거물한 와중에도 고슴이를 찾는다. 일단은 자리에 눕히고 아이를 달랬다. 할머니 집에 두고 왔나 봐, 엄마랑 밝을 때 한 번 더 찾아보자. 평소라면 울고불고했을 텐데, 웬일로 오늘은 쉽게 잠자리에 들어준다. 다행이다. 


  우선 큰 애를 닦달해 본다. 너 고슴이 못 봤니? 아니. 

  큰 애가 무슨 죄인가. 차키를 쥐고,  머리를 질끈 묶고, 잠옷 차림으로 지하주차장으로 냅다 뛰었다. 밤이 늦어 이웃 주민들이 내 모습을 보지 못해 어찌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뛰는 와중에도 매의 눈으로 길을 살핀다. 고슴아, 거기 있니? 제발 있어다오. 길에는 떨어진 인형 따윈 없다. 차 안 구석구석 핸드폰 후레시에 의존해서 여기저기 살핀다. 없다. 큰일이다. 오만가지 생각이 든다. 그러게 그 작은 인형을 들고 다닐 때부터 알아봤다. 어디서 구하지도 못하는 작은 고슴도치 인형이다.



 

  4살 무렵인가? 선물 받은 옷에 대롱대롱 달려있던 아기 손바닥만 한 인형에 애착을 갖기 시작한 지 3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간 작았던 인형은 아이의 손때가 묻고, 손과 발이 날아가고, 솜이 빠져서 더욱 보잘것 없어졌다. 그래도 좋단다. 그 인형이 아니면 안된단다. 옷에 달려있던 인형이다 보니 어디서 구할 수도 없다. 세탁을 하고 싶어도 할 수도 없다. 여기서 코까지 떨어져 버리면 어떡하란 말인가. 등에 구멍이라도 생기면? 그렇게 애지중지 아끼던 녀석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애보다 내가 더 안달이 났다. 내가 더 그 인형에 애착이 있었나 보다. 찾아야겠다. 밤이 늦었지만 잠들지 못하고 다시 한번 더 지하주차장으로 달려가본다. 친정 엄마에게 전화도 계속 돌려본다. 친정까지 들썩들썩 난리통이 되었다. 그게 어딜 간거지? 혹시 놓쳤을까 싶어 왔던 길을 되돌아올 때도 매의 눈이 되어 살핀다. 그런데, 없다. 기적처럼 어디선가 뿅! 하고 나타나길 기도하며 오지 않는 잠을 청했다. 


  눈 뜨자마자 아이는 고슴이를 찾는다. 솔직하게 말을 할 수가 없다. 어떡하지? 어떻게 해야 아이 마음을 다치지 않게 고슴이가 이제는 없다는 것을 알리지? 출근 시간은 째깍째깍 다가오고, 아이는 고슴이를 찾고, 나도 덩달아 다시 눈이 벌겋게 온 집을 다시 뒤진다. 일단 한 보 후퇴다. 엄마가 이따 퇴근하고 다시 찾아볼게. 아마 별 진전은 없겠지만 일단은, 그렇게 달래서 친정으로 보냈다. 제발 일하는 동안 친정에서 고슴이를 찾았다는 연락이 오기를. 퇴근 시간이 부지런히 다가오는 지금도 그런 연락은 없다. 잠잠한 내 휴대폰. 진동이 울릴 때마다 한 번씩 기대를 품어보지만, 역시 그냥 광고 문자뿐이다. 오늘 저녁엔 애착인형과의 이별을 고해야 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어떻게 이 난관을 헤쳐나갈 것인가. 


  언제나 누구나 이별의 순간은 찾아온다. 오늘이 우리 둘째에게는 가장 사랑하는 인형과 이별하는 날이다. 늘 내가 제일 사랑하는 건 너야,라고 작은 인형에게 속삭여주던 모습이 눈물과 함께 스친다. 마음이 쓰리고 휑한 것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한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어릴 적 내가 아끼던 인형이 닳아빠졌다고 쓰레기봉투에 담겨 있던 걸 목격했을 때, 그렇게나 마음이 아플 수 없었다. 마흔이 넘은 이 순간까지도 그때의 기억은 아프다. 그 아픔을 내 딸이 겪어야 한다니, 그때보다 더 아프다. 애착이란 게 원래 이런 건가? 


  꼭 안아주어야겠다. 고슴이가 더 넓은 세상을 구경하고 싶었나 봐. 다시 집에 돌아올 때까지 많이 보고 오라고 응원해 주자. 구경 끝나고 집에 왔을 때, 재밌었던 일을 꼭 얘기해 달라고 하자. 우리 둘째는 고슴이가 하는 말 알아들을 수 있으니까, 엄마한테도 얘기해 줄 거지? 여행이 너무 신나서 오래 돌아오지 않으면, 꿈에서라도 꼭 만나자고 큰소리로 얘기하자. 그럼 고슴이가 언제든지 꿈에 놀러 와서 신나는 모험담을 얘기해 줄 거야. 고슴이가 길고양이에게 물려가지 않고, 무사히 여행을 잘 마칠 수 있도록 우리 같이 기도해 주자. 고슴이 좋겠다. 그지? 


  아이의 동심을 지키면서, 아픈 마음까지 달랠 수 있을 대본이 되려나? 


  오늘은 일손이 제대로 잡히지 않는다. 어서 마무리하고, 딸을 만나러 가야겠다. 많이 아프지 않길 바라며.





[덧]


두근두근, 딸아이를 만나러 가는 길이 이렇게 떨릴 일인가.

딸아이에게 마지막으로 물어보자.


손에, 고슴이 쥐고 있었던거 맞아?

맞아. 내가 휴지로 토끼 옷 만들었는데, 찢어져서 고슴이랑 같이 가지고 있었다구. 


앗! 어제는 듣지 못했던 말이다. 


그 휴지는 어쨌는데?

버렸지. 

고슴이는? 

손에 쥐고.


하.... 이제 알았다. 고슴이가 여행간 곳.


은색 반짝이는 휴지통 뚜껑을 열었다. 휴지만 한가득이다. 살포시 휴지를 들어본다. 

까꿍. 나 여기 있지롱, 헤헤. 이제 찾았네? 

네, 이놈. 거기 숨어서 잘도 내가 짓던 한숨을 들으며 나를 비웃고 있었겠구나. 

허탈하다. 어제 오늘 내가 얼마나 마음을 졸이고, 집을 들쑤시고 다녔던가.

이제사 웃음이 비실비실 나온다. 


오늘은 고슴이를 곁에 두고, 행복한 꿈을 꾸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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