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뙤약볕이 내리쬐는 8월의 어느 무더운 여름날. 매미 소리만 한가롭게 울려 퍼지고, 아스팔트 위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 덕분에 서 있기만 해도 눈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그런 어느 날. 우리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하원 후 놀이터로 향했다. 아침에 분명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을 했던 것 같은데. 오늘은 너무 날이 더워서 놀이터는 가지 않기로. 점심 먹고 나면 그런 약속 따위 싹 잊어버리나 보다. 내 건망증보다 심한 거 같은데.
삼삼오오 손에 손을 잡고 이미 저만치 친구들과 뛰어가 버린 아이들 뒤를 엄마들도 함께 뛴다. 표정이 모두 같다는 것이 웃음 포인트지만, 아무도 웃을 수가 없다. 고작 몇 걸음 뛰었다고, 이미 이마며 콧등으로 흐르는 땀 때문에 부채질을 하기 바쁘다. 아이들은 덥지도 않은가 보다. 뉴스에서는 연일 폭염주의보를 외쳐 대는데, 온열질환 환자가 속출한다는데, 너희는 어째서 이 땡볕 아래에서 꼭 저렇게 그네를 타야 한단 말이냐. 엄마 얼굴에 기미가 옅어질 날이 없구나. 온몸으로 광합성을 하며 깔깔깔 좋다고 웃어대는 모습을 보니 또 데리고 오길 잘했다 싶다가도, 1분도 안되어서 온몸을 적시는 땀을 보고 있자니, 어이구 저러고도 뛰어다니는구나, 걱정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온다. 저러다 우리 애 잡을까 봐.
남자애들은 손에 잠자리채 하나씩을 들었다. 나무 위에서 신나게 노래 부르는 매미며, 방아깨비며, 잠자리를 잡겠다고 이리저리 숲 속을 뛰어다닌다. 그러다 수풀 속에 숨어있던 모기한테 온 다리가 얼룩덜룩해지도록 헌혈을 하고 가렵다고 또 다리를 벅벅 긁으면서 엄마를 찾는다. 여름내 매일매일 반복되던 일상이다.
내 방학은 끝이 나서 나는 이제 놀이터에서 해방이다. 아직 다른 엄마들은 아이들 꽁무니를 쫓으며 놀이터 출근 도장을 찍고 있겠지? 근데 또 막상 시원한 에어컨 아래에서 일하고 있자니, 놀이터 뙤약볕이 약간 그립기도 하다. 그 속에 있을 땐, 여름에는 놀이터를 합법적으로 문 닫는 법안을 통과시켜야 된다는 둥, 어떻게 하면 놀이터 말고 집으로 바로 갈 수 있을지를 아주 심각하게 고민했었는데 말이다.
쉬는 시간 종소리가 아이들 웃음소리 같다. 줄줄 녹는 아이스크림 하나씩 입에 물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목마다 멈춰 서서 풀숲을 살피느라 쑥 내민 엉덩이를 떠올리니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