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론자의 입장에서 본 종교의 의미
한국인 아빠와 결혼한 우리 엄마는 인도네시아 사람이고, 이슬람이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는 한국과 너무 다른 이슬람교(돼지고기 금지, 히잡 착용, 매우 보수적) 문화에 적응실패. 이슬람인 부모님 아래에서 다른 종교를 가지기도 어려우니 나는 자연스레 종교 자체와 멀어져 갔다. 종교 없이도 잘 살아오다가 25세에 갑자기(!) 진짜 갑자기 철학에 빠진다. 지혜를 사랑하고, 정의를 고민하는 철학(philosophy)이라는 학문이 매력적이었달까. 그렇게 나는 그때부터 지혜로움을 갈망했다.
한 달 전 현지가족들과 인도네시아 여행 중에 이슬람 사원에 방문했다. 인도네시아 사촌들은 모두 기도를 드리러 들어갔고, 단순 여행자이자 무교인 나는 종교적인 기도라기보다 인도네시아의 멋진 사원에서 명상하기 바이브로 현재의 고민이나 바람 등을 생각하며 이모들과 같이 기도를 드렸다. 근데 한 이모가 기도하는 내 모습을 보며 갑자기 눈물을 흘리는 것.. 엄마한테 물어보니 한국에서 온 조카가 히잡을 쓰고 기도하는 모습이 기특하고 감격스러워서였다고 한다. 나는 이게 이 정돈가… 어리둥절해하며 종교라는 건 인간에게 어떤 의미일까 돌아가는 길에 한참 생각하고 고민했다. 그 일련의 고민들을 기록하고 나눠보고자 한다.
지극히 주관적인 관점에서, 신이라는 이상적이고 완벽한 존재를 만들고 그의 탄생 과정을 이야기로 만든다. 그의 존재는 완벽하기에 그의 말씀도 완벽하다. 기독교로 치면 성경이고 불교로 치면 경전이겠지. 반면에 인간이라는 존재는 한없이 나약하다. 더군다나 나 혼자만이 아니라 사회라는 울타리 속에서 다른 타인들과 어울려 지내야 하기 때문에 실수하고 자책이나 후회 뭐 그런 감정을 때려 맞으며 살아간다. 이 과정에서 누구는 좌절하고 누구는 극복한다. 나는 인간이 필연적으로 느껴야만 하는 이 부정적인 감정을 극복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신에게 드리는 기도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희망과 사랑으로 살아간다. 나와 달리 완벽한 존재에게. 아무리 나의 모습이 추하고 역겹더라도 이 완벽한 존재는 내 어떤 모습도 인정하고 사랑해 줄 것이기에. 기도하고 신을 믿음으로써, 유일하게 나를 믿어주는 신을 위해서 다시 살아갈 희망을 얻는다. 이것이 내가 무신론자임에도 리스펙 하는 종교의 기능이다.
종교인들은 기도가 이루어지면 신이 들어준 거라 하지만 나는 기도하는 동시에 내가 그것을 실천하려 노력했기 때문에 ‘내’가 이루었다고 생각한다. 신이 있는지 없는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현재 나는 종교를 갖고 있지 않다. 신이 아닌 나를 믿고 내 주변 사람들을 믿고 싶다. 나를 더 사랑하고 주변 사람들을 더 사랑하고 싶다. 신을 믿어 내 사고회로가 하나의 방향으로 흐르지 않길 바란다. 나는 명상도 하고 철학을 좋아하는데, 무언가 하나 빠진 느낌은 있다. 내 안에 뿔뿔이 흩어져있는 지혜를 하나로 통합해 줄 그 무언가. 나는 그것이 없어서. 내가 스스로 그 역할을 자처해야 하기 때문에, 내 기준에서 정의롭지 못한 행동을 했을 때 매우 고통스럽다. 따라야 할 절대적인 기준 같은 것이 없어서. 즉, 불완전한 내가 중심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다양한 상황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 끊임없이 생각하고 판단을 내려야 한다. 홀로 고민하는 그 과정에서의 나는 혼자 어두운 터널을 걷는 듯한 끝없는 외로움을 느낀다.
신을 왜 믿지 않느냐라고 물어본다면, 나는 그럼에도 이 방향이. 정의에 대해 고민하는 이 순간들이 나에게만큼은 더 가치 있기 때문이라고 답하고 싶다. 나는 왜 갑자기 철학을 좋아하게 됐을까 매번 궁금했는데 이제야 알게 되었다. 나는 중심을 잡으려 애쓰기 위해서 철학을 찾았구나.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었음을 글을 쓰면서 깨닫는다.
일말의 두려움은 있다. 나 지옥 가면 어떡하지? 정말 신이 있다면? 그러나 지혜롭고 완벽한 존재라면, 이런 의심 많고 어리석은 존재를 불쌍히 여겨 자비를 베풀어주기를
나는 신에게 기도를 드리는 건 어쩌면 명상과 같다고 생각한다. 나에 대해 생각하고 과거를 반성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고자 하는 다짐처럼. 차이는 대상의 유무에 있을 뿐이겠지. 신에게 드리는 기도를 떠나 나를 돌아보고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 사람과 아닌 사람은 분명 차이가 있을 것이다. 나에 대한 반성과 타인에 대한 너그러움과 같은 그런 기본적인 마음들. 경쟁에 치이고 성과에 혈안이 되어있는 한국에는 쉼이 필요하다. 종교던 명상이던 나를 돌아보고 안정시킬 수 있는 무언가. 어떤 것이라도 좋으니 이런 것들을 통해 우리나라 사람들이 마음의 평안과 여유를 얻었으면 한다. 아, 종교는 조금 불리할 수 있겠다. 결과가 무엇보다 중요한 한국 같은 경쟁 사회에서 타인에 대한 무조건적인 믿음은 위험요소에 포함이 되는 걸지도. 그렇지만 정말 크게 보면 우리는 죽음이라는 너무나 명확한 결과를 정해두고 살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살아가는 과정에 좀 더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