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청년의 과로사와 우리가 해야 할 질문.
최근 런던베이글뮤지엄(London Bagel Museum)에서 20대 직원이 과로로 숨졌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고인은 하루 열여섯 시간 넘게 일했다고 한다. 인터넷은 금세 들끓었다. 불매운동, 악플, 대표 SNS 테러. “원래 이름도 거슬렸어.” “빵이 너무 비쌌잖아.” 분노는 순식간에 하나의 방향으로 향했다. “그래서 대표가 누군데?” 마치 이 사회의 모든 불합리의 원인이 한 사람에게 달린 것처럼. SNS에서 대표를 향한 저격글이 쏟아지는 모습까지 더해지면서 이 사안은 단순한 한 업체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분노의 도화선이 됐다.
사실 이런 장면은 낯설지 않다. 언제나 그랬다. 사고가 터졌다. 책임자가 누구야? 사과해. 사퇴해. 실제로 망치를 내리듯 누군가를 표적 삼아 집중포화하고, 손가락질하고 누군가의 머리를 숙이게 만든다. 그리고 잊혀진다. 하지만 그게 진짜 해결일까?
표적을 정하면 끝나는 사회
제주항공 여객기 추락 사고 때도 그랬다. “기장 책임론”이 퍼졌고, 회사는 ‘관리 소홀’을 인정했다. 하지만 정작 비행 안전 체계가 어떻게 바뀌었는지는 누구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이태원 참사도 마찬가지다. “그날 왜 경찰은 거기에 없었냐”는 분노가 폭발했다. 하지만 그 이후, 군중 관리 매뉴얼은 얼마나 달라졌는가. 현장은 여전히 위험하고, 재난의 매뉴얼은 여전히 책 속에 있다.
런던베이글뮤지엄 사건도 그 연장선 위에 있다. ‘누가 잘못했는가’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를 물어야 한다. 누군가가 주 80시간을 일해도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시스템. 휴식이 사치로 여겨지는 문화. “요즘 청년들은 열정이 없어”라고 말하는 세대의 시선. 이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구조의 고장이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사람에게 화를 낸다. 왜냐면, 구조는 너무 크고, 추상적이니까. 그래서 사람을 미워하는 게 훨씬 쉽다.
이제는 질문할 때
하지만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분노를 쏟기보다 질문을 해야 한다. 누군가의 사과로 끝나지 않고, 제도가 움직이고, 현장이 변해야 한다. 그래야만 다시는 같은 뉴스가 반복되지 않는다.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은 이름을 잃었다. 이제는 ‘누가 잘못했나’를 따지기보다, ‘어떻게 바꿀까’를 생각하자. 사람이 아니라 구조가 바뀌는 것. 그게 진짜 애도고, 비극을 기억하는 가장 온전한 방식이 아닐까.
※ 이 글은 '데이지 매거진'에 기고한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