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어린이집을 거쳐 유치원을 다니고, 또 학원을 다니게 되니 새로운 친구엄마들을 만나게 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대부분은 그렇지 않지만, 가끔은 호구조사 먼저 시작하는 엄마들이 있어 참 당황스럽다.
우리 첫째 아이가 유치원에 입학한 후 처음으로 놀이터에서 같은 반 친구를 만났다. 그리고 며칠 후 어느 여유 있던 날 등원길에 만나 그 친구엄마와 잠시 커피를 함께 할 기회가 있었다. 유치원 정보를 서로 공유하고 싶은 마음도 있고, 아이들끼리 친하게 지냈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커피가 나오자마자 '아~ 그런데~ 찐빵엄마 몇 살이에요?'부터 '무슨 일 하세요?'까지 호구조사가 시작되었다. 예상치 못한 질문들에 당황해서 순순히 답변하고 말았다. 아, 이게 아닌데.
정확하진 않지만 나와 비교해 말하는 걸 듣자 하니, 상대 엄마는 나보다 4-5살 정도 많은 것 같았다. 그리고 슬슬 반존대를 시작했다. 본인이 나보다 나이가 많다 이거다.
나는 친구엄마가 몇 살인지 무슨 일을 하는지 보다, 친구아이가 유치원 밥을 맛있다고 하는지 주변에 어떤 반찬가게 음식을 가장 잘 먹는지 우리 동네 소아과보다 더 나은 선택지가 있는지 궁금한데.
상대 엄마와 나 사이에는 유치원을 함께 다니는 아이들이 있다 보니 격 없는 친구처럼 지내긴 어려운, 조금은 어려울 수도 있는 사이인 건데. 게다가 개인적으로 처음 만난 자리라 아직 친근감이 없는 사이인데 왜 호구조사를 하는 것인가. 기본정보를 먼저 공유하고 빠르게 친해지자는 뜻일까, 아니면 친해질 수 있는 사람인지 미리 확인절차를 거친 걸까. 뭐가 됐든 나는 너무 당황스러웠다.
가끔 놀이터에서 보면, 아이들끼리 친구인데 부모들끼리도 친구인 경우를 보곤 한다. 원래 친구였던 사이인 건지, 아이를 통해 친구가 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부럽기도 하다. 매일의 고충을 밀접하게 나눌 수 있고 매일 마음만 먹으면 만날 수 있는 육아동지가 있고, 아이들끼리 잘 어울리는 사이라니 더할 나위가 없지 않은가.
내가 좀 까탈스러운 것 또는 효율적이지 못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렇게 절친한 사이가 되려고 하더라도 첫 만남에서부터 개인정보를 공유하고 싶진 않다. 모든 것은 시간이 쌓여 자연스럽게 나누게 되는 것이 맞지, 무슨 인간관계를 이렇게 급속으로 진행한단 말인가.
나는 레고를 맞출 때도 조립설명서 먼저 보기보다는 조각들을 눈으로 훑고 머릿속으로 그려보고 내 생각대로 다양하게 조립을 시도해보곤 한다. 그러고 보니 나는 참 비효율적이기도 하다. 그래도 나는 내 방식이 좋다. 나는 친구가 많은 편은 아니지만, 친구라고 생각하는 모든 이들은 함께 한 시간이 길든 짧든 내 모든 것을 나눌 수 있고 언제든 돕고 도움받을 수 있는 깊은 관계 속에 있다.
'오늘날의 예의'의 모양이 많이 바뀌고 있다고는 하나, 상대를 당황시키는 행동은 대부분 예의에 어긋난 행동이니 첫 만남, 아니 친밀감이 두터워지기 전까지는 아이들 사이의 관계를 더 잘 이해하고 필요할 때 협업하고 소통할 수 있는 수준의 신뢰를 만들어 가는데 초점을 맞추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