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필심 Sep 05. 2024

상한 마음

관계와 상처의 유통기한

관계에는 유통기한이 있다.

내 의지에 따라서,

혹은 자연스럽게 이제 다시는 안 볼 사람도 있다.


그러나 관계의 유통기한은 지났어도,

그 사람으로부터 받은 상처에는 유통기한이 없다.

즉 상처는 지속된다.


유통기한이 없는 상처는, 내게 병을 주었다.



유통기한이 끝난 관계는 의도치 않게 상기된다.


초중고 시절 날 괴롭게 했던 사람들,

군대에서 날 힘들게 했던 사람들 등등.

초중고를 졸업했고, 군대를 전역했어도 떠오른다.


이성적으로는 더 이상 내게

영향을 끼치지 않을 사람들이라는 것은 안다.

그러나 심리학에서 말하기를,

트라우마를 입은 뇌는 과거에 머무른다고 한다.

여전히 그들로부터 받은 상처는 내 머릿속에서 재생된다.



유통기한이 끝나지 않은 관계도 내게 상처를 준다.

예를 들면 가족이다.

이들로부터 받아왔던 상처는,

현재 눈에 계속 보이기에 자주 상기된다.

가족을 사랑하기에 오히려 그들로부터 받은 상처도 아플 때가 종종 있다.


사랑하기에 더욱 이해해 주기를 바라고

사랑하기에 더욱 공감해 주기를 바라며

사랑하기에 더욱 안아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런 기대가 좌절되었을 때 더욱 쓰라리다.



못된 사람들로부터의

못된 언어들을 삼키는 순간,

마음은 ‘체한다’.


마치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물을 섭취하면

체하는 것처럼.


그렇기에 상대의 나를 향한 언행을

조심스럽고 주의 깊게 살펴본다.

상대의 언행이 ‘상했는지’ 확인하려고.


매번 마음의 냉장고에,

상대의 ‘상한 언행’을 보관하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그것을 보관하고,

심지어는 삼키고 나서야

후회를 반복한다.


더욱 슬픈 건, 상한 음식은

며칠 고생하다가 낫는 경우가 많지만,

상대로부터의 ‘상한 언행’은

몇 년 간 지속되고 내게 상처를 준다.



그리고 가장 슬픈 사실은,


유통기한이 있는 관계든,

유통기한이 없는 관계든,

그들로부터 받은 상처에는

유통기한이 없다는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명백한 피해자, 그러나 가해자는 모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