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에게 잔인한 표현
내 고통을 누군가에게 ‘납득’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고민하는 게 괴로웠다.
겨우 괴로운 과정을 거쳐,
나름의 설득력을 갖추었다 생각한 내 고통 이야기가
타인 입장에서 설득되지 않았을 때의
허탈감과 실망감 때문.
누군가와 약속을 힘겹게 잡아서
누군가와 힘들게 대화할 기회를 얻어서
내가 갈고닦으며 준비했던
얘기들.
‘나 이렇게 힘들었다고’
‘나 정말 이 정도로 망가진 상태라고’
‘제발 내게 공감을 해달라고’
‘ “많이 힘들었겠다”라는 말을 내게 해달라고’
라며 공감을 구걸했던 지난 날들.
공감을 구걸했지만
나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한
수많은 타인들...
그때마다
나의 존재가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나의 세상이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수많은 실패를 반복하면서도
그 실패 뒤에 다시 도전을 하였다.
어떻게 하면 더 설득력 있게
타인에게 내 이야기를 전달할까.
어떻게 하면 내 목소리를 그들이 들어줄까.
어떻게 하면 그들이 날 껴안아줄 수 있을까.
마치,
새끼가 제 어미에게 젖을 달라 발악하며 울지만
어미는 제 새끼가 아닌 양
외면하는 꼴.
이런 과정을 겪고 나서야 알았다.
나의 ‘상처’를,
타인에게 설득하기 위한
‘논리’와 ‘이성’이라는 요소가
필요하지 않다는 걸.
그럼에도 난 내 상처에
논리와 이성을 결부시키고자 하였다.
그렇게
‘공감 구걸’
을 하였다.
안 그래도 아픈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