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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TJ이현 Oct 15. 2024

돈이 행복이라면 내가 벌어볼게 #6

중학교 1학년이 되었다.

이때 나의 10대 인생이 크게 바뀐 계기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 집에 컴퓨터가 생긴 것이다.

그 당시에만 해도 굉장히 값비쌌던 컴퓨터였는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겠지만 내 방에 컴퓨터가 생겼다.


나는 이 선물로 인해 내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걸 얻고 또 정말 중요한 걸 잃게 되었다. 그 두 가지는 차차 뒤로 갈수록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중1 때부터 고3까지의 6년을 한마디로 압축하자면 "폐인" 이었다. 요즘도 아이들이 게임하는 것이야 너무 당연하겠지만 나는 그 수준을 아득히 넘어선 말 그대로 "게임폐인" 이었고 흡사 히키코모리였다


처음부터 그렇게 까지 폐인이 되진 않았었다. 본격적으로 변하게 되었던 계기는 롤플레잉 rpg 게임이라는 장르를 하고부터이다. 이 장르 게임은 일명 노가다 게임인데 한 자리에서 일정시간 동안 계속해서 리스폰되는 몬스터를 잡고, 잡으면 나오는 부산물들을 마을의 npc에게 가져다주면 퀘스트 보상을 주는 형식이인데 그때 당시의 퀘스트 난이도는 정말 악명 높았다.


이러한 반복적인 작업들로 인해 끈기, 인내심, 무언가 열심히 하면 결과를 얻는다는 걸 깨닫게 된 때이다.

그럼 왜 굳이 그걸 하고 있냐라고 물어본다면 예전에는 동네에서, 그리고 학교에서 인정받고 주목받고 싶었다면 이제는 그 울타리를 넘어서 더 많은 사람이 있는 곳에서 인정을 받고 싶었던 것 같다. 더 좋은 아이템으로, 더 높은 레벨로, 길드장이라는 직책으로 등등 학생이었지만 하는 게임마다 나는 일명 랭커였고 물론 학교에서도 게임 잘하는, 레벨이 높은 아이로 유명했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부모님이라면 아니 그렇게 까지 게임만 하는 아이를 방치하는 부모가 어디 있나라고 의아해 할 수 있겠지만 우리 집은 그러했다. 밤늦게 까지 게임을 해도, 밤을 새도, 공부를 안 해도 무어라 말 한 말씀하신 적이 없었다.


궁금하여 이 글을 작성하며 엄마에게 물어보았더니 엄마는 혼자 벌어 두 아이를 먹여 살려야 했다 보니 회사도 다녀야 하지, 집에 돌아오면 밥도 차리고 살림도 해야 하며 쉬는 날이 없기 때문에 그럴 여력이 없으셨다고 하셨다.


이 때 아빠는 엄마에게 용서를 빌고 다시 집에 돌아왔었지만 몇개월 지나지 않아 또 다시 사라졌었고 나의 진로나, 공부에 대해서나, 학교 생활에 대해서나 한번도 물어보거나 대화를 나누어 본적은 없었기에 나는 공부를 하고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정말 중요한 시기에 방치아닌 방치가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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