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 김기태 (2024, 한국)
엉뚱한 형태로 전해지고 아주 긴 시간이 지나서야 실현되는
신쨩별점: ★★★★
니콜라이와 진주는 중학교 동창이다. 진주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해 기회균형전형으로 서울 소재 모 대학의 행정학과에 진학했다. 공무원 시험에 3번 떨어졌고, 지금은 대형 마트에서 사람들이 주문한 물건을 찾아 담는 일을 하며 삶을 유지하고 있다. 고려인 4세 니콜라이는 공업고등학교에 진학해 여러 공장을 거쳐 경기도 동남부의 어느 자동차 부품공장에 취직했다. 진주가 사는 동네였고, 둘은 우연히 마주쳤다. 중학교 시절, '하얀 봉투'를 받는다는 것 외에는 아무런 접점도 없는 사이었으나 둘은 서서히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역사는 이것보다 훨씬 길다. 진주의 역사는 1997년 외환위기 때 시작되었다. 당시 서울에 한 부부가 살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의 무능을 탓하며 악다구니를 써대며 다투었다. 그들은 손에 잡히는 대로 가재도구들을 집어던졌는데, 바닥에는 갓난아기가 기고 있었다. 그 아기는 진주다. 세계는 이러한 모습으로 진주에게 다가왔던 것이다.
니콜라이의 역사는 더욱 멀리 거슬러 올라간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니콜라이를 모르지만, 그들이 니콜라이의 많은 것을 결정했을지도 모른다. 니콜라이의 먼 조상은 먹고살 길을 찾아 연해주로 떠났다. 소련 정부는 그들을 중앙아시아의 척박한 땅으로 이주시켰다. 그때 기차에서 손을 꼭 잡고 내린 두 사람이 있었다. 남자는 2차대전에서 전사했고, 아내와 아이만이 남아 전쟁의 결말을 목격했다. 훗날 그들의 후손은 다시 한국 땅으로 돌아가게 되었는데, 한국말을 하지는 못했다. 그들은 니콜라이의 부모님이다.
인간의 삶이란 간단히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라는 문장으로 끝나는 선언문이 있었다. 1864년 영국 런던에서는 '국제노동자협회'라는 조직이 창립되었는데, 이 조직은 이후 '제 1 인터내셔널'이라 불리게 되었다. 이렇게 시작한 인류사 최대의 혁명은 한때 세계의 절반을 뒤덮었다. 혁명은 야만적인 부르주아지와 거대 자본의 폭압에 맞서 싸울 것을, 그러기 위해 전 세계의 프롤레타리아가 연대할 것을 요구했다. 연대하면 이길 것이고, 해방될 것이고, 존엄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그렇게 예언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이야기의 끝을 알고 있다. 혁명이 예언한 그런 시대는 오지 않았다. 혁명은 오늘날 니콜라이와 진주가 좋아하는 웃긴 이모티콘과 밈으로만 남아 있다. '아직 강철이 뜨거울 때 두들기자'던 인터내셔널의 노래 역시 그들이 함께 이삿짐을 정리할 때 듣는 재미있는 '노동요'가 되었다. 이제 진주와 니콜라이를 위해 목소리를 내는 혁명가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니콜라이가 들여다보는 스마트폰 화면 속에는 '네가 선택한 삶이잖아', '누가 칼 들고 협박했냐' 같은 말들이 부유하고 있을 뿐이다. 종종 니콜라이는 자신이 그렇게 잘못 살았는지 잠깐 생각해볼 때가 있지만, 그런 생각을 깊게 하는 성격은 아니다. 다행이지만 조금은 서글픈 일이다.
그러나 어떤 예언은 엉뚱한 형태로 전해지고 아주 긴 시간이 지나서야 실현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진주와 니콜라이는 가족도, 연인도, 그렇다고 단순한 친구 사이도 아니다. 애매모호한 그 관계를 그들은 '친한 사이'라는 둘만의 농담으로 정의한다. 그런데 그들은 모르지만 그들의 관계를 설명해줄 낡은 단어가 하나 있다. '인터내셔널'이다. 진주와 니콜라이는 서로가 서로의 삶을 지탱해주는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을 구성하고 있다. 그들의 작은 '인터내셔널'에는 그 어떤 기치도, 구호도, 이념도 없지만, 그것은 분명히 '인터내셔널'이다. 모든 개인이 분절되어 공허한 이 시대, 진주와 니콜라이는 서로가 서로에게 혁명같은 존재가 되어주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