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섯에 결혼을 하고 17년이라는 결혼 생활동안 두 딸을 낳고 기르며 일을 절대 놓지 않고
정말이지 쉼 없이 치열하게 살았다.
운이 없게도 친정이나 시댁이나 양쪽 다 애를 봐줄 만한 여건이 되지 않았다.
모든 워킹맘들이 그러하겠지만 애가 아플 때가 제일 힘들었다.
수업을 하다가 애가 아프다고 해서 중간에 중단할 수도 없고
애는 맡길 곳이 없고 발을 동동 구르며 안절부절 못 했던 때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았다.
도움을 받을 때가 없는 워킹맘은 정말 속이 타드러 간다.
한 번은 테솔 자격증을 따는데 마지막 시험을 앞두고 당시 세 살이었던 둘째가 수족구에 걸려서
어린이집을 가지 못하게 되자
어느 곳에도 맡길 곳이 없었던 나는 당시 2학년이었던 큰 애를 학교에 강제 결석을 시키고
둘째를 큰애에게 맡기고 시험을 보러 간 적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매정했던 엄마였지만 마지막 시험을 보지 못하면 자격증이 나오지 않는 절박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큰애도 그때 애였는데 일한다고 큰애한테 둘째를 보게 하는 경우가 많아서 지금도 큰애한테 너무 미안하다.
남편의 도움도 컸지만 내가 꾸준히 일할 수 있었던 8할은 큰애 덕분이다.
둘째는 자기가 어린이집에서 제일 마지막으로 가니까
어린이집 가기 싫다고 머리를 땅에 박기도하고
초등학교 2학년때는 열이 펄펄 끓어서 조퇴를 하고 집에 왔는데 엄마는 일을 해야 된다며 오지 않고
아픈데 자기 혼자 있었다면서 서러웠던지 지금도 울먹이면서 그때 이야기를 한다.
학원을 차리고 3년 동안은 가족들이 일 중독이라고 말할 정도로 24시간 학원 생각뿐이었다.
사업을 시작한 이상 말아먹으면 안 되었기 때문에 치열하게 살았다.
내가 보는 책은 전부 다 영어교육서였고 내가 하는 말들은 다 학원 관련된 말이었으며
주말에는 각종 영어수업 세미나를 쫓아다녔다.
학부모님들의 카톡은 늦은 밤 주말에도 쉬지 않아 일일이 답변해 주느라 쉬지 못했고
퇴근하면 집안일에, 학원 업무, 둘째 공부 시키기, 블로그에 학원 관련 글을 올리기 등
나를 위해 온전히 쉴 수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학원을 다른 원장님에게 넘겨주고 더 이상 학원을 출근하지 않아도 되었을 때
처음 며칠은 치열하고 숨 막히는 이 일을 더는 하지 않게 되어서 너무 신났다.
하지만 쉬어본 적 없는 나는 어떻게 쉬어야 되는지 알지 못했다.
내 인생에 있어서 날 위해 쉬어 본 적이 있었던가?
20살 때부터 생계를 책임져 온 나에게 쉰다는 건 게으른 사치였으며, 성공을 포기하고 나약함을 택하는 비겁한 루저쯤으로 생각했다.
하나를 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그 다음은 무엇을 해야 할지를 생각했으며 하루가 숨 가쁘게 돌아가지
않으면 내가 제대로 살고 있지 않는 거 같아서
오히려 더 불안해하며
이렇게 여유로워할 때가 아니라며 내 자신을 채찍질했다.
일을 관두고 나서도 바로 다음날 계획표를 짰다.
올빼미형인데도 불구하고 모닝 미라클을 몸소 실천해야 한다며
다섯 시에 기상하고 책 읽고 영어공부하기,
재테크 강의 들으면서 공부하기, 블로그에 글쓰기,
운동하기, 학교에서 둘째 오면 공부시키기, 집안일등 빈틈없이 빼곡하게 계획을 채워 넣었다
계획표에 쉬는 시간 따위는 없었다.
어쩌다 소파에 잠시 앉아 있는 시간조차도 가만이 있을수 없었고 심장이 뛰면서 불안함이 엄습해 오면서
잡다한 생각들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내가 이렇게 일 안 하고 집에 있는 게 잘하고 있는 것인가?
이 다음에는 무엇을 하면서 먹고살아야 하나?
일을 하지 않는 나를 보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오늘은 블로그에 글을 올리지 못했네 일하면서도 글을 꾸준히 올리는 사람도 많은데
나는 일도 안 하면서 글도 꾸준히 발행하지 못하고 정말 찌질한 루저 같다는 등
하루가 계획표대로 이행되지 못하면 하루의 끝은 한심한 나 자신을 자책하고
반성하느라 시간을 허비하곤 했다.
결국엔 생각에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그냥 좀 아무 생각 말고 아무것도 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봐 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도둑질도 해 본 놈이 잘 한다고 나는 나에게 강제 쉼을 제공하기로 마음 먹었다.
첫 번째 : SNS 정리하기
학부모 카톡을 정리했다. 카톡 리스트를 보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일에 대한 연속성을
안겨다 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연락하지 않는 불 필요한 사람들도
카톡 리스트에서 제외시켰다.
학원 홍보용으로 하던 인스타도 정리했다. 인스타에 들어가면 너무나도 예쁘고 돈 많고 잘난 사람들이
나에게 "나는 이렇게 잘 나가는데 너는 뭐 하고 있니?"라며 비꼬는 거 같다.
그리고 시간 날 때마다 들여다 보는 쇼츠도 안 보기로 했다.
자기 전 쇼츠를 보면 중독성이 있어서 계속 보게 되고 그러면 뇌가 각성이 되면서 잠이 오질 않았다.
두 번째: 커피와 독서로 하루를 시작하기
커피와 독서는 절대 포기할 수 없는 내 인생의 머스트 아이템이다.
아침에 눈을 뜨고 커피를 내릴 때 내 마음은 설렘으로 벅차오른다.
커피가 내려지는 동안 잡념들을 내려놓고 지금 여기에 집중해 본다.
책은 나와 마음에 맞는 단짝 친구다.
일상생활에서 사람을 만나지 않아도 그리 아쉬울 게 없는 이유가 나에게는 책이 있기 때문이다.
단, 단짝을 고르는데 시간이 필요하다.
이 좋은 시간을 만끽하기 위해서는 가족이 일어나기 전 시간을 확보해야 하며,
아니면 가족이 각자의 일로 집에 없을 때 오롯이 즐길 수 있다.
세 번째: 산책한다.
지금 이사 온 집이 낡은 구축 아파트여서 여러 가지 불편한 점이 많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로 이사오기를 잘했다 생각한 거는
집 근처에 강이 있다는 점이다. 강을 따라 산책할수 있고 자전거도 탈 수 있어서
잡념이 들거나 몸이 찌뿌둥할 때 나가서 몸을 움직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모든 것들이 말끔히 씻겨 나간다.
네 번째: 충분한 잠을 자기
예전에는 누워서 낮잠을 자는 건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다.
누워있으면 처리해야 될 일들이 떠올라 이불킥을 하며 벌떡 일어나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피곤한 거 같으면 낮잠을 자도 된다고 나 자신에게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미라클 모닝을 실패해도 괜찮다며 그 대신 충분한 수면을 취하지 않았냐며 나를 다독이고 있다.
다섯 번째: 맘에 드는 커피숍 가서 글쓰기
일을 할 때는 창가에 앉아 유유자적하면서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는 사람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아직 아이들 방학이라 실천하지 못했지만
아이들이 개학을 하며 노트북을 들고 맘에 드는 커피숍에 가서 글을 써보리라.
집에서 글을 쓰면 온갖 집안일들이 나를 처리해주지 않는다며 아우성을 치는데
커피숍에서는 온전히 집중하면서 글을 쓸 수 있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