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와 원인의 차이
"남 탓 하지 마라."
자책하지 않고 외부에서 문제점을 찾아내면 무조건 듣게 되는 표현 같다.
누군가를 탓한다는 건 그 사람의 문제가 아님에도 그 사람의 문제로 귀결시키는 것이다.
철수가 저지른 문제를 철수에게 나무라는 건 탓을 하는 게 아니다.
양측 모두 문제가 있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도 상대가 저지른 문제만 상대의 문제라고 하는 건 탓을 한다 볼 수 없다.
주변에 남 탓을 하지 말라며 트집 잡기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면
언제나 문제의 원흉이 자신이기에 남 탓을 하면 안 된다는 표현이 그들에게는 진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신이 그렇다고 남들도 그런 건 아니며
누군가 문제를 저지른 적이 있다고 이후로도 그 사람이 문제의 주범인 건 아니다.
저런 표현이 더 큰 문제로 작용하는 순간이 있다.
특히 마음에 상처를 받은 사람들 앞에서
의사, 간호사, 상담사 등 전문 의료진이 환자, 내담자에게 말을 내뱉을 때다.
"모든 문제는 당신에게 있어요. 외부에서 문제를 찾으려고 하지 마세요."
일반인 신분인 사람이 내뱉는 것과 전문성을 가진 사람이 내뱉는 것의 책임의 무게감이 다르다.
말 한마디로 생사가 뒤바뀔지도 모르는 상황이라면 더욱 그렇다.
상처를 받고 힘겨워하는 사람들의 과거를 되짚어보면 딱히 그들의 잘못으로 생긴 문제는 없다.
타인에게 받은 상처가 곯고 곯다가 더 이상 손을 쓰기 어려워진 것뿐이다.
"선생님과 함께 과거를 되짚어보니 제 문제가 아님이 밝혀졌는데 왜 제가 바뀌어야 하나요?"
위 질문을 내뱉으면 답변 대신 정적만 흐르곤 했다.
시간이 지나도 그에 대한 답변은 없었다.
마음의 상처는 언제나 내가 아닌 외부에서 발생하게 된다.
내가 저지른 행동, 내가 내린 선택이라면 결과가 어떻든 힘들어할 사람은 없다.
사건 발생 시 피해자들은 고통스러워하지만 가해자들은 그렇지 않은 점도 여기에 있다.
논리와 이성으로 생각한다면 문제를 저지른 사람이 책임을 지는 게 맞지만 가해를 저지르는 사람들은 보통 논리와 이성보다는 감정에 치우쳐 있다.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이라면 한 순간 가해자일 수는 있어도 한평생 악인으로 남지는 않는다.
하지만 문제는 외부에 있더라도 원인은 내부에 있다.
원인이라는 건 잘못이라는 것과는 다른 개념이며 당신에게 있는 원인이 납득이 가는 원인일 수도 납득하기 어려운 원인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당신이 움직여야 한다.
힘든 일을 겪은 사람에게 상대를 용서하라고들 말하지만 반성도 안 하는 가해자를 어떻게 용서하라는 말인가?
우리의 아픔은 억울함과 부당함에서 지속되고 있는 중이다. 가해자가 반성을 안 하더라도 사회 질서에 맞게 합당한 대가를 치른다면 누구도 자신이 겪은 과거에 매몰되지 않는다.
"자신의 행동에 책임도 안 지고 잘만 지내다니. 심지어 사회의 그 누구도 저런 행동을 문제 삼지 않고 있어."
문제만 안 삼으면 다행이지 오히려 가해자를 옹호하는 경우도 많다. 가해자 본인 스스로도, 사회에서의 질서를 책임지는 집단에서도 모두가 피해자를 외면한다면 피해자는 평생 피해자로 남게 되지는 않는다. 이번에는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순간이 오게 될 수도 있다. 그 누구도 그 행동이 잘못된 거라고 명확히 따져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옳고 그름을 명확히 따지는 것.
당장의 피해자는 물론, 미래 우리 모두에게 이롭게 작용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