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동서문학19-닿을 수 있는 거리>>동시 수록 작품
킁킁
일요일 아침이에요.
게으른 주인아주머니를 이끌고 산책을 나왔어요.
월 화 수 목 금 토요일 내내
네모난 집 안의 네모난 방 안에 갇혀
소파를 물어뜯고
두루마리 휴지를 굴리다
한쪽 다리를 멋지게 들고 침대 모퉁이에 오줌을 갈기고는
신문지 몽둥이에 볼기짝을 맞으며 지냈죠.
아, 봄이 왔나 봐요.
지지난 주에는 온 세상이 흰 눈으로 뒤덮였는데
축축한 흙을 비집고 새싹들이 돋아난 게 보여요.
콧속을 파고드는
꽃바람 속에 노란 생강나무 꽃향기도 배어 있어요.
가만, 이건 꽃다지잖아요.
얼른 오줌을 누어야겠어요.
길 위에 기억해 두었다가 다음에 꼭 다시 보러 올 거거든요.
그때에는 작고 귀여운 꽃대가 목을 쑥 뽑아 올리겠죠.
벌써부터 설레어요.
물빛 하늘과 하늘빛 호수가 만나
산등성마루를 기어오르는 물안개는 어쩜 저리도 신비로울까요?
자꾸 몸이 떨려와요.
아, 이런 게 살아 있다는 의미겠죠?
앗, 잠깐만요.
사람들은 왜 항상 나를 보며 귀엽다고 웃는 걸까요?
난 그저 이 신선하고 아름다운 봄날 아침을
온몸으로 오롯이 느끼고 싶을 뿐인데 말이죠.
아무래도 수다쟁이 주인아주머니를 데리고
사람들이 없는 골목으로 돌아가야겠어요.
그들은 너무 시끄럽고
난 지금 누구의 방해도 받고 싶지 않거든요.
그럼, 이만 실례할게요.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