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의 프로세싱-2
눈앞에 갑자기 '마이쮸'가 쑥 들어왔다. 옆 좌석에 앉은 신사 분이 건넨 것이다. 두 살 난 아들과 함께 탄 12시간의 비행시간 중 위로가 되는 순간이었다. 나는 사실 고국을 떠난 마음이 여태 달래지지도 않았는데, 아이는 아이대로 최선을 다해 "엄마 나 힘들어요"라고 표현하고 있었다.
남편과 나의 연애기간은 고작 3개월이었다. 그나마 직장이 둘 다 강남이었기 때문에 자주 만날 수 있었지만, 나는 집이 인천이어서 버스 시간을 맞춰야 했었고 회식이 길어진 데다 버스 파업이 맞물렸던 날, 그날이..
생리주기가 일정치 않은 나로선 찜찜했던 그날의 관계를 막아보려 노력했지만, 씩씩한 내 아들은 자신의 첫 집에 자리를 잡았고 미숙아 판정일 기준이 하루 지난(37주 1일) 2011년 9월 22일 제왕절개로 태어났다. 전치태반이었던 데다 자궁 내 피가 많이 고여 있던 탓에 아가는 내 몸에서 탈출했지만 숨을 쉴 수도 당연히 첫울음도 울지 못했다. 나는 나대로 수술 후 열이 심했고 아이는 아이대로 인큐베이터 안에서 세상을 만날 준비를 했다. 모자상봉은 아이가 태어난 지 일주일 만에 이루어졌다.
아이는 상상 이상으로 나를 힘들게 했다. 젖 먹던 힘을 다해라는 말은 악착같이 무언가를 해낼 때 하는 말인데, 아이는 젖을 빨지 못할 정도로 약했다. 힘도 없는 녀석이 엄마가 잠시라도 옆에 없는 건 기가 막히게 알아차렸고 아이는 자주 병원 신세를 졌다. 남편이 캐나다에 출국하던 그 달에만 두 번을 입원했고 날수로 따져보니 한 달을 거의 채웠었다.
그래도 가족은 함께 있어야지.
아빠가 곁에 있어야 아이도 좋겠지.
남편도 캐나다 생활 잘 적응하고 있으니 믿자.
남동생도 캐나다에 있으니(도와주겠다 했으니) 용기를 내자.
난생처음 탄 비즈니스석에서 비행시간 내내 칭얼대는 아이를 달래라며 '마이쮸'를 건넨 신사분!
그 마이쮸를 이민 후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손에 쥐면서 이겨냈습니다. 두 살 아기는 그 캔디를 못 먹어서, 제가 제 마음속 소프트캔디로 간직했습니다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