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을 쏘다: 정말, 퍽 좋았지

열 번째 책, 조지 오웰 <나는 왜 쓰는가>

by 김연큰

지난 세 편의 글에 걸쳐 정보의 통제, 범람, 신뢰성 등에 대한 이야기를 한 건 이번 편부터 시작하는 제 이야기에 대한 밑밥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인간, 인간 외 다른 종, 국가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범위를 점점 좁혀왔죠. 이 브런치북을 기획할 때부터 반환점 즈음에 저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국가와 저라는 존재 사이에 정보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앞서 언급한 정보의 속성은 실상 모든 세계에 영향을 끼치기에 어느 쪽에 들어가도 상관없습니다. 그럼에도 굳이 그 위치에서 했던 이유는 정보의 속성 때문에 제가 겪은 '일련의 사건들'이 있고, 그 덕분에 제가 본격적으로 자신을 돌아보며 왜?라는 질문을 지속적으로 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다루는 책은 소설 <1984> 및 <동물농장>으로 유명한 조지 오웰의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입니다. 그가 쓴 수백 편의 에세이 중 스물아홉 편의 글을 엮은 책입니다. 제가 이 책을 접한 시점은 '일련의 사건들'을 겪은 이후 잠시 쉼표의 시간을 가질 때였는데요, 놀랍게도 이 책에서 그 사건들을 돌아보게 만든 에세이가 세 편이 있었습니다. 그 에세이들과 제가 겪은 일이 어떻게 연결되었고 그를 통해 제가 어떤 생각을 하게 됐는지를 이번 편에서 다루려 합니다.


이 글에서는 책 전반의 감상을 다루지 않습니다. 책을 읽다 든 생각 중 '제 인생 및 가치관에 영향을 준 생각'을 위주로 다룹니다. 이 책에 대한 전반적인 저의 감상은 아래 링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kim-lotus-root.tistory.com/37




코끼리를 쏘다


조지 오웰은 학교 졸업 이후 경찰이 되고 당시 영국 식민지였던 버마로 자진하여 갑니다. 이 선택은 오웰에게 조국(영국)과 제국주의에 대한 혐오감을 갖게 하고 결국 "고약한 양심의 가책" 때문에 경찰직을 사직합니다. 이 에세이는 버마에서 경찰간부로 근무했던 시절에 코끼리를 총으로 쏴야만 했던 사건을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오웰이 보여주는 제국주의에 대한 혐오는 제가 IT업계 및 게임업계에서 일하면서 가진 "양심의 가책"과 유사하다고 느꼈습니다.


나는 제국주의가 사악한 것이니 어서 직장을 때려치우고 그로부터 멀어질수록 좋다는 생각을 이미 하고 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나는 이론적으로는 전적으로 버마인들 편이었고, 그들의 압제자인 영국인들을 전적으로 적대시했다. 내가 하고 있던 일에 대해서는, 내가 설명할 수 있는 그 어떤 정도보다 지독하게 혐오했다.


저는 IT 업계에서 목격한, 모든 것을 플랫폼화하여 생태계를 독점하려는 모습이 제국주의와 무척 닮았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이 업계에서 하고 싶었던 건 이런 게 아닌데, 빨리 때려치우고 멀어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을 오래전부터 했습니다. 오웰처럼 '이론적으로는' 대형 IT 회사가 추진하는 플랫폼을 비판하는 사람들 편이었고, 플랫폼 생태계 구축을 밀어붙이려는 회사 리더들을 '전적으로 적대시'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하는 일에 대해 '지독하게 혐오'하는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아직 진행 단계였고 구체화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일 정말 하기 싫지만 그래도 혹시 모름, 망할지도?' 같은 생각이었다고나 할까요.


이후 게임회사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합니다. 일명 '집게손 사건' 이후로 이미지를 검수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는 창작의 자유를 저해하는 사악한 검열이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사건의 출발이 의도적이라는 것에도 동의하지 않거니와, 백번 양보해서 그 출발이 의도적이었을 거라 가정한다 쳐도 검열로 걸린 창작물이 누가 봐도 억지인 경우가 대부분이었거든요. 심지어 실무를 하는 사람들 사이에도 '이것까지 집게손이라 보는 건 너무하다'는 이야기가 나오곤 했지만 현실적으로 실무자가 할 수 있는 건 없었습니다. 이 경우에 있어서도 저는 '이론적으로는' 게임회사의 이미지 검열을 비판하는 사람들 편이었고, 회사의 방침을 '전적으로 적대시'했습니다. 게다가 이런 일을 제가 실행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보니 IT 회사에서보다 더욱 제가 하는 일에 대해 '지독하게 혐오'하는 상황까지 가고 말았죠.


* 참고: “GS25發 ‘남혐’ 논란은 비정상적 ‘메갈 찾기’ 편집증” - 신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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