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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협업Soulutioner 노준환 Jul 19. 2024

자기 머리로 생각하면 겁날 게 없다

이어령 교수의 ‘마지막 수업’ 중

지난 겨울이었다. 정말 좋아하는 인생 선배님이 막내딸을 참 귀여워해 주셨다. 기회를 봐서 셋이 함께 식사하는 자리를 만들었고, 당연히 내가 밥값을 치렀다. 선배님께선 그것이 못내 마음에 남으셨나 보다. 그 추운 날 종로에서 광화문 교보문고까지 우리를 데려가시더니 “마음에 드는 책 한 권씩 골라”라고 하셨다.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하셨다. 책이라면 눈이 돌아가는 우리는 신나서 각자 좋아하는 코너로 달려갔다. 책을 고르는데 이어령 교수의 ‘마지막 수업’이 눈에 들어왔다. 선배님께 ‘혹시 이 책 어떠세요?’ 여쭤보니 반색을 하며 좋아하셨다.


그날 딸과 나는 선배님 마음을, 선배님은 내 마음이 담긴 ‘마지막 수업’을 손에 들고 서로의 집으로 갔다. 그렇게 몇 개월인가 흘러서 다시 교보문고에 갔는데 그 책이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선배님은 이어령 교수의 어떤 점이 그렇게 좋으셨을까?’ 그 궁금증 하나로 책을 샀다. 그런데 참 손이 안 갔다. 이상하게 이분 책은 펼치기가 부담스러웠다. 뭔가 어려울 것 같고, 뭔가 나와 안 맞는 내용일 것 같고 여튼 그랬다. 다시 얼마가 지나서야 책장에 있는 이 친구를 손에 들었다.


‘그래, 어떤 책인지나 보자.’ 책을 휙휙 넘기는데 한 구절에서 머릿속에 천둥 같은 울림과 생각의 회오리가 몰아쳤다. 이 글 제목으로 적은 ‘자기 머리로 생각하면 겁날 게 없다’를 읽을 때였다. ‘노년의 교수가 자신의 삶을 단 한 줄로 요약했구나’ 하는 울림과 ‘나는 내 머리로 생각하고 있나?’ ‘생각이 뭐지?’ ‘온전히 나만의 생각이란 존재하나?’ 하는 회오리가 사정없이 머릿속을 몰아쳤다. 조금 정신 차리고 이 문장을 다시 봤다. ‘어째서 이 문장이 내 마음속에서 이렇게나 크게 요동치지?’ 이유를 ‘생각’해 봤다.


2020년에 코로나가 터지면서 누구나 그렇지만 ‘강의’와 ‘프로젝트’를 하는 나는 더더욱 할 일이 없었다. 그래서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동안 읽었던 책, 자료들을 좀 체계적으로 정리해보자’라는 마음에 가볍게 시작했던 개인 프로젝트였다. 그런데 이게 생각보다 힘들었다. 노트북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던 자료, 또 읽고 나서 언젠가 정리해야지 하고 한구석에 모셔만 뒀던 책들, 에버노트 같은 웹서비스 여기저기에 적어 놓은 글들 등. 모두 정리하는 데 6개월인가 걸렸다.


그 6개월간의 느낌을 한 줄로 요약하면 ‘내가 읽은 책이 결국 내 길이었구나’였다. 무엇보다 내가 읽은 책들만 봐도 내 정체성을 알겠더라. 경영, 경제, 철학, 심리학 딱 이 네 종류였다. 대략 35년간 정확하진 않지만 5,000권은 넘게 읽은 듯하다. 그럼에도 이 범주를 넘어선 책이 거의 없었다. 다른 하나는 내가 사고하고, 내가 말하고, 내가 행동하는 거의 대부분, 아니 전부가 내가 나에게 입력시켰던 이 책들의 범위 안이었다. 무엇보다 소름 끼치는 경험이 있다.


고객과 워크숍이나 프로젝트를 하다 보면 고민이 참 많다. ‘어떻게 하면 이 이슈를 해결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우리가 좀 더 쉽게 이슈의 본질을 토론할 수 있을까?’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 보면 나름 영감처럼 떠오르는 유레카들이 있다. 신기하게도 대부분의 유레카는 내가 원하는 효과를 냈다. 내가, 온전히 나만의 생각으로 나만의 방법을 찾았고, 그것이 효과를 발휘했다는 뿌듯함은 세상을 다 가진 듯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느낌이었다. 그런데…6개월간 정리하면서 알았다. 그것은 나만의 유레카가 아니었다는 걸.


이전에 읽었던 어떤 책의 어느 구절이었다. 심지어 그 내용이 좋아서 별표 5개를 했던 구절들이었다. 이건 꼭 언젠가 써먹어야지, 잊어버리지 말아야지 했던, 그렇지만 세월이 지나며 잊고 지냈던 그런 내용들이었다. 그것이 어떤 계기에 유레카처럼 떠오른 것이었다. 그때였다. ‘생각’을 ‘생각하게’ 된 때가. ‘나만의 생각이란 존재하나?’ 아니 존재할 순 있다 해도 ‘노준환이 나만의 생각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등등 별의별 질문을 해댔지만 결국 답을 못 찾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노년의 교수는 ‘자기 머리로 생각’한단다. 이게 얼마나 어려운지,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 그리고 이런 글을 왜 이분이 살아계실 때 알지 못했는지, 너무 아쉽고 또 아쉽다. 지금 나는 ‘마지막 수업’ 책장을 덮어놓았다. 이젠 다음을 읽고 다음을 읽어 언젠가 이 책이 끝나는 게 싫어서, 가끔 아주 조금씩 이 책을 만난다. 이젠 볼 수 없는, 과거엔 보지 않았던 그분의 글 몇 구절을 적으며 글을 마치려 한다.


“나는 평생 누굴 보고 겁을 먹은 적이 거의 없어. 헤겔, 칸트도 나는 무섭지 않았어. 나는 내 머리로 생각했으니까.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하나하나 내 머리로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인간은 흔치 않거든.”

"자기 머리로 생각한다는 게 무슨 뜻입니까? 누구나 머리는 자기 것이지요. 오히려 다들 제 생각에만 빠져 살지 않습니까?"

"머리는 자기 것이지만 생각은 남의 것이니 문제지.”

“간곡히 당부하네만, 그대에게 오는 모든 지식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키지 말게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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