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던 2021년 기적처럼 우리에게 예쁜 천사가 찾아왔다. 그 예쁜 천사가 내게는 외손녀가 되는 태명이 송이다. 송이라는 태명은 친할머니가 송이버섯 꿈을 꿨다 해서 지은 이름이다. 그 천사를 맞이하기엔 세상이 너무 어수선하고 암울했다. 가까이서 볼 수도 세상에 태어난 모든 순간을 함께 할 수도 없었다. 다만 핸드폰으로 보내준 사진으로만 볼 수 있었다.
지금은 어느덧 30개월이 넘어 우리는 잘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지만 설명도 하고 재잘재잘 자기주장을 펼 줄도 안다. 아기 때라 멸치의 짠맛을 우려내고 해주다가 이젠 좀 괜찮을 것 같아서 물에 덜 우리고 해준 멸치볶음을 줬더니 인상까지 쓰면서 ’할미 짜요! 짜요! 외친다. 먹는 것도 주는 대로 먹지 않고 본인 의견을 확실히 말한다. 옷도 마음에 드는 옷만 입으려고 한다. 신발도 자기가 골라서 신다 보니 여름 샌들을 눈 내리는 한겨울에 신고 어린이집에 간다. 싫다 좋다 감정을 표현할 때 보면 제법 큰애처럼 보이고 이야기가 통하기도 한다. 그래서 내 눈에는 예원이가 천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혼자 웃고는 한다.
뒤집기 한 번을 위해 얼굴이 새빨개지도록 몇 번이고 뒹굴었다. 기어 다니기 위해서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온 힘을 다했다. 무엇이든지 손에 잡을 수만 있으면 잡고 일어섰다. 세상을 다 얻은 것 같던 표정을 보며 우리에게 많은 행복을 안겨 줬다. 걸을 것 같다가도 매번 주저앉았을 때는 우리가 더 조바심을 냈다. 모든 일 들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뛰어! 뛰어! 를 외치며 잘도 달려 다닌다. 기분이 좋고 신났을 때는 더욱더 걷는 일이 드물다.
20개월 무렵에는 친할머니와 외할머니를 구별하기 어려웠는지 두 할머니 이름을 스스로 지어 불렀다. 친할머니는 아빠 엄마로 외할머니는 엄마 엄마로~ 얼마후 아빠 할미와 엄마 할미로 고쳐 부르는 깜찍한 우리 송이. 어린이집을 다녀오는 길목에 놀이터가 있다. 놀이터를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거의 매일 몇 시간이고 시간을 보내게 된다. 하루는 춥기도 하고 비도 약간 내리는데 집에 갈 생각을 하지 않아서 설득하다 지쳐서 강제로 안고 오게 됐다. 집까지 오면서 쉬지 않고 젖먹던 힘까지 내서 큰소리로 내려줘요! 내려줘요! 외친다. 집안에서 목소리만 듣는 사람이 있었다면 강제로 아이를 데려간 줄 생각을 할 정도로 소리를 질렀다.
집에 들어와서도 신발을 벗지 않고 고집을 부려서 그냥 모른 체하고 주방에 있었다. 한참 후 ’할미! 할미‘ 하고 부른다. 갔더니 신발을 벗어서 가지런히 놓아둔 것을 가리키며 빙그레 웃는다. 벌써 잘잘못을 알면서도 줄다리기를 하는 것이리라.
요즈음은 그네 타기에 푹 빠져있다. 어린이집을 가기 싫어할 때도 즉효 약이 그네 타기다. 장난감을 던지면서 말을 듣지 않을 때도 밥을 잘 먹지 않을 때도 물론이다. 어린이집을 가기 전에도 그네를 한 번 탄 후 들어간다. 더 높이 높이를 외치며 무서워하지도 않고 즐긴다.
송이를 보면서 처음으로 오래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서 난생처음 수영을 시작했다. 물이 너무 무서워 몇 달째 죽을 것 같은 무서움에 수없이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다시 마음을 다잡고 도전하고 있는 이유도 송이와 함께 수영장에 갈 수 있는 날을 상상하면서 이겨 내고 있다. 되도록 날마다 만 보 이상을 걸으면서 건강을 챙기는 것도 송이와 오래 있고 싶은 이유다.
꿈이 하나 더 생겼다. 송이와 여행을 다니고 싶은 꿈이다. 그래서 요즈음 생각에는 송이가 쑥쑥 하루빨리 컸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는 천천히 나이 들어가면 좋겠다는 어린아이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송이가 원하는 것은 모두 해 줄 수 있는 친구 같은 할머니가 되고 싶다. 그래서 우리 송이가 사랑받고 사랑을 줄줄 알고 세계 어디든지 훨훨 날개를 펴고 날 수 있기를, 배려할 줄 알고 어려운 이웃을 위해 봉사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일 모두 하며 감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건강하게 행복한 꿈을 잘 이루며 살아가는 예쁜 송이를 응원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송이와 오래오래 함께할 수 있는 꿈을 향해 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