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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꽃J Oct 16. 2024

연, 끊자

끊어버린 인연

파아란 하늘에 커다란 솜사탕 같은 구름이 헤엄치듯 둥둥 떠다닙니다.

시원한 가을바람이 불어오는 주말, 오랜만에 한강시민공원으로 나갔어.

바람이 이따금씩 얼굴을 스쳐 가며 기분 좋게 불어옵니다.


강가에는 연을 날리는 사람들이 몇 보여요.

문득 연을 날리던 어릴 적 추억이 생각납니다.

'나도 날려볼까'

예정에 없던, 편의점으로 가서 연을 하나 사들고 나옵니다.


어릴 때처럼 연을 바닥에 내려놓고 실을 조금 풀어 앞으로 뛰기 시작했어요. 처음엔 연이 이리저리 흔들리다 간신히 떠오르더니, 몇 번의 시도 끝에 마침내 하늘 높이 날아올랐습니다.


하늘에 떠 있는 연을 바라보니 기분이 정말 좋았어요.

마치 연과 함께 하늘을 나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그냥 앞만 보고 달렸어요.

그 순간만큼은 어릴 때로 돌아간 듯한 착각이 들었죠.


그러다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었어요. 연이 따라오지 않는 겁니다.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니, 아뿔싸! 연줄이 전봇대줄에 걸려버렸어요

하필이면 사람들이 많이 앉아 있는 잔디밭 바로 옆이네요.

 주변이 웅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연 걸렸나 봐, 어떡해?"

"조금 당겨보면 될 것 같은데."

"저럴 땐 그냥 끊어버려야 돼."


여러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저는 연줄을 살짝 풀었다 당기기를 반복하며 연을 살리려 애썼습니다.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몸을 흔들어보기도 했죠. 하지만 아무리 해도 연은 풀리지 않았습니다.


실을 살짝 풀었다가 당겨보기도 하고,

왼쪽 오른쪽 좌우로 몸을 움직여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해도 연은 풀리지 않아요.


포기할까 생각하던 순간, 보다못한 여자친구가 다가와 말합니다.

'안되면 그냥 끊어!'

그 말에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힘을 내봤지만, 결국 줄이 바람에 휘감겨 더 엉켜버렸습니다.

이제 정말 안 되겠다 싶었어요.


연 한번, 연결된 실 한번.

연 한번, 또 실 한번 바라봅니다.

큰 숨을 쉬고, '툭' 끊어버립니다.

뒤돌아섭니다.


하지만 몇 걸음 가지 못하고, 다시 한번 연을 올려다봅니다.

잠시나마 행복했던 연과의 시간을 떠올리며, 작별 인사를 건넵니다.

'안녕'


세상을 살다 보면, 한때 나와 함께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던 사람과 이별을 고민하는 순간이 오곤 하죠.
이렇게 저렇게 내가 조금 더 노력하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생각하며 겨우겨우 인연을 이어가지만,
어느 순간 깨닫습니다.
'안될 인연이구나.'

그때는 마음을 굳게 먹고 이별을 선택해야 할 때입니다.
오늘, 나와 연의 이별처럼 말이죠.

그렇게 터벅터벅 걸어갑니다. 인생의 작은 쓴맛을 또 한 번 맛본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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