ꕤ 성별이 '남자'였던 작가가 '여자'로 살아가며 겪었던 실제 스토리.
지난 날, 내 의사와 달리 가부장적인 집안 환경에서 성별만으로 친누나로부터 무언가 우월해질 수 있었지만, 이제는 같은 여성으로서 서로를 견제하는 듯한 불편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나는 아직 남성의 몸을 가지고 있었지만, 친누나는 이미 나를 자신과 동등한 '여자'로 여기고 있다는 것을 감지 할 수 있었다. 그 어색한 긴장감은 아직 성전환 수술을 받지 않은 나의 몸과, 이미 ‘여자’로 취급받는 현실 사이의 괴리에서 비롯되었다.
마치 내가 남성의 몸을 입고 있는 여성과 같은, 모순적인 존재가 된 듯한 느낌이었다. 내가 더 이상 친누나보다 우위에 놓인 위치가 전혀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했지만, 이제 그 사실은 나에게 어떤 기이한 쾌감을 주었다. 그녀의 눈총에 내 안에서의 긴장감과 함께, 남자로서 느껴볼 수 없는 여성으로서의 새로운 종류의 짜릿함에 경도되었다.
어머니는 그녀에게 “언니”라고 부르라고 했지만, 그 어색함은 마치 우리 사이에서 내가 먼저 넘어가야 할 늪이라도 생긴 것만 같았다. 부끄러우니 말이다. 나의 여성성을 인지한 친누나는 ‘자매’라는 새로운 유대관계가 형성되었기 때문에 서열을 우선하는 듯 보였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내가 늪을 건너오지 않을까 노파심에 얼굴빛은 차가운 한기로 맴돌았다. 그럼에도 내가 고집을 피우는 것처럼 보였는지, 엄마는 온가족 앞에서 나의 성별은 여자, 차녀, 둘째 딸, 여동생, 작은누나로 확실히 못 박으려 했다.
이렇게 공포되려는 그 순간, ‘여자’에 익숙한 친누나의 한쪽 입가에는 꼬리가 올라가더니 표정이 매섭게 돌변했다.
“미친 년이.“
일찍 결혼하여 만삭의 몸으로, 곧 출산을 앞두고 있던 그녀는식탁에서 일어나 내 머리채를 움켜잡고 내 고개를 뒤로 젖혔다. 마치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 그녀는 절호의 타이밍을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언니로서 자매의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개화하고 있던 나의 음기를 기습적으로 비틀고, 순식간에 짖눌러버렸다.
부모님도 서열이 결판나는 찰나를 반기는 듯, 노련한 포식자의 먹잇감 사냥을 애써 말리지는 않았다. 그 매정함은 엄격했다. 먹잇감의 애처로운 눈빛을 피할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선수친 그녀의 관발에 나는 그저 눈 뜨고 코를 베일 수 밖에 없었다. 생각할 틈도 없이 서열이 드러난 지금, 이 순간부터 나는 “언니”라고 부를 수 밖에 없게 되었다.
머리채 잡히는 그 모습이 시사하는 의미가 나에게는 무겁게 와닿았다. ‘머리채’는 여자로 간주했기에 잡히는 것이라는 것을 누군가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깨닫았다.
한편,머리채가 잡힌 나의 눈빛에서 그녀는 모든 걸 느끼는 듯 했다.
그래서일까? 그녀는 짧은 나의 머리카락을 더욱 움켜쥐며 무언가 확인사살 하듯, 더이상 내가 남자가 아니라는 것을 재확인시키는 것 같았다. 짐작컨대 ‘남동생’이었던 내가 여자가 되었다는 것에 이른 우월감을 느끼는 듯했다. 여튼 그녀는 내가 남성으로서 가졌던 특권이 사라진 것에 대한 일종의 안도감과 함께, '여자'가 된 나를 경쟁자로 여기며 은근한 적대감도 낮추지 않았다.
내가 이미 성전환 수술을 마치고 여자가 된 것처럼, 아빠의 눈에도 나의 성별이 완전히 ‘여자’로 고정되어 있었다. 그의 행동은 나를 더 이상 남성으로 대하지 않으려는 의도를 분명히 드러냈다.
이전에 성별이 남자였을 때는 친누나에게 “누나”라고 따박따박 부르라고 강요했지만, 이제는 친누나와 성별이 같은 여자끼리 굳이 언니라고 할 필요까지 있냐며 “야”라고 부르라고 했다.
아빠의 행동은 내가 더 이상 남성으로서의 권위를 누릴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것은 마치 내가 이미 ‘여자’가 되어 그의 지시를 따라야 한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태도였다. 분명했다.
가족들의 이러한 변화는 내 안에서 깊은 절망과 함께, 설명할 수 없는 내적 흥분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들의 규정 안에서 새롭게 정의되고, 그 속에서 이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들을 경험하는 것 자체가 미묘한 감정을 주었다.
게다가 부모님은 재산을 남동생에게 훨씬 더 많이 물려주겠다고 선언했다. 남동생은 집안의 기둥이자 미래였고, 나는 여전히 남성의 몸을 하고 있었지만, 부모님에게는 이미 친누나처럼 그저 시집을 가서 남의 가문의 씨를 받아, 남의 가문의 피를 이어주는 매개체 같았다.
엄마는 점점 부풀어 오르는 친누나의 배를 쳐다보며, 무언가 다가올 미래에 대해 자연스레 이야기하곤 했다. 그때마다 엄마와 친누나는 자연스럽게 나의 배로 시선을 옮겼고, 그 시선은 마치 친누나의 만삭 배가 곧 나의 미래가 될 것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암시하는 듯했다.
그들의 시선은 친누나의 부푼 배가 나의 가까운 미래를 상징하는 것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다. 마치 나는 곧 친누나처럼,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리는 존재가 될 것이라는 소리없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듯했다.
재산을 덜 물려받는다는 그 불공평함은 분명 억울했지만, 동시에 남성으로서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종류의 차별은 나의 내면을 더욱 깊숙이 파고들었고, 그 과정에서 나는 남성으로서는 경험할 수 없었던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딸이 되어버린 내게 부모님은 재산 증식보다 자녀 생산의 호기심 생겨나는 찰라였다. 그래서일까 수치심, 한계, 절망,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포용하는 욕망은, 이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새로운 종류의 쾌락이 생겼다.
남동생의 입대를 앞두고 떠난 삿포로 온천 여행에서 아빠는 나와 함께 목욕을 할 수 없다는 사실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나는 여전히 남성의 몸을 하고 있었지만, 아빠에게는 이미 여성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마치 성전환 수술을 한 여성처럼, 아빠는 나의 변화된 성별을 인정하고, 과거처럼 함께 목욕을 할 수 없다는 사실에 혀를 차며 아쉬워했다. 마치 귀한 보석을 잃어버린 듯한 아쉬움이었다.
반면 엄마는 내 등을 밀어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기뻐했다. 아빠의 아쉬움은 남성의 시선이 여성의 몸에 가지는 의미를 깨닫게 했고, 엄마의 기쁨은 내가 여성적인 역할에 갇혔음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그들의 시선은 나를 더욱 수동적인 존재로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