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요즘 만나는 사람 없어?’
드디어 이 순간이 오고야 말았다. 일정 농도 이상 친해져 가는 사람과 대화를 하다 보면 무조건 마주하는 이 순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이 순간이 나는 정말 불편하다. 왜냐하면, 남자를 좋아하는 남자로서 있는 그대로 나의 연애상태를 드러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 순간은 나와 ‘모르는 사람’으로 시작해 ‘아는 사람’을 건너 조금씩 관계를 쌓아나가 ‘친구’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무조건 거치는 곳이다. 수많은 방을 가진 나의 호텔에 체크인을 하기 전 들러야 하는 리셉션이라고나 해야 할까. 나의 호텔에서는 최고급 스위트 룸부터 이코노미 더블 룸까지 나와 얼마나 가깝고 많은 것을 공유하는지에 따라 방 배정이 달라진다. 하지만 이 리셉션에 처음 도착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체크인을 못하고 로비에서 대기해야 하는 운명이다. 즉 방을 아무한테나 쉽게 내줄 마음이 없다는 뜻이다. 나는 아주 능숙하게 자연스러운 표정을 짓고 편안하게 대답하는 척한다. “지금은 없지.” 그 뒤로 이어지는 질문들은 대개 “왜 너처럼 멀쩡한 애가 여자친구가 없어?”, “마지막 연애가 언제야?”, 아니면 “소개받을 생각 없어?” 정도가 되겠다. 이 질문들에 대한 대처도 이미 충분히 연습해 왔다. 지금은 혼자인 게 좋다는 둥,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둥, 아니면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지금은 연애가 급하지 않다는 핑계정도. 이렇게 급한 불을 끄고 나면 한동안은, 아니 당분간 만큼은 이 관계에서 나의 연애라는 주제가 얘깃거리에서 희미해지게 된다(아주 다행히도).
나의 연애 상태에 대한 상대의 궁금증은 나를 향한 또 하나의 관심이나 애정일 수 있는데 이를 받아들이는 것이 불편하다는 사실은 참으로 슬픈 일이다. 나를 해할 마음이 전혀 없는 상대가 나를 불쾌하게 만드는 현실. 이것이 내가 살고 있고 매일 겪고 있는 현실이다.
나는 나의 연애 상태를 궁금해하는 질문에 거짓말을 하는 것이 정말 힘들다. 이는 나뿐 아니라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모든 성소수자들이 느끼는 답답함일 것이다. 애초에 거짓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불가피하게 사람들을 속이는 느낌은 정말 불편하다. 그것도 나의 주변사람을 어쩔 수 없이 계속 속여야 하는 상황이라면 얼마나 답답할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더 나아가 나의 정체성을 숨겨야 하는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성소수자에게 불리하게 자리 잡은 사회 분위기를 한번 더 깨달을 때면 숨이 턱 막히게 된다. 물론 모든 성소수자들이 십수 년간 단련된 각자의 거짓말이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 불편함은 내가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걸 꺼리게 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회사에서, 체육관에서, 친구의 친구를 만나게 되는 자리에서 사람들과 친해지면 자연스럽게 각자의 연애와 결혼 얘기가 나오기 마련이다. 20대 후반 30대 초반에게 연애와 결혼얘기는 너무 자연스러운 대화 주제고 나도 나의 연애상태를 묻는 상대를 탓할 마음은 전혀 없다. 하지만 가볍게 나의 연애상태를 물어본 상대에게 커밍아웃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꺼내는 건 대화 맥락에 맞지 않을뿐더러 상대가 나의 성적 지향을 알고 난 이후 예견되는 안전하지 않은 상황들이 너무 많다. 성소수자에 대해 안 좋은 인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한순간에 내가 혐오의 대상이 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상대가 성소수자에 대한 여러 편견과 선입견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관계에서 나의 연애 얘기를 유쾌하게 하기란 불가능하다. 더 나아가 나에게는 받아들이는데도, 긍정하게 되는데도 오래 걸렸던 나의 성적지향을 상대가 너무 쉽게 생각해 아무한테나 말하고 다니지는 않을까 걱정도 된다.
이런 여러 우려와 걱정을 하느니 차라리 관계를 더 깊게 끌고 가지 않는 것을 선택하게 된다. 만날 때마다 나의 연애상태를 궁금해하거나, 만나서 연애얘기 말고는 할 얘기가 없는 관계에서의 대화는 나를 점점 불편하게 만들고 나는 자연스럽게 그들과 멀어지게 된다. 어떻게 보면 나는 의식적으로 그들과의 만남을 줄여나가기도 하는 것 같다. 그 불편한 순간이 잦아지는 만남에서는 상대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내게 남는 건 불쾌함 뿐이니까 말이다.
나이가 들수록 인간관계가 좁아져간다고들 한다. 모든 사람에게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하지만 게이인 나에게는 조금 더 슬픈 방식으로 가속화된다. 나의 인간관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는데, 나 그대로를 온전히 받아줄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과의 관계이다. 전자와의 만남에서는 나의 많은 것들을 공유할 수 있기 때문에 만남이 편하고 잦아지는 반면 후자와의 만남에서는 불편함과 불쾌함이 많아져 만남을 꺼리게 된다. 그렇게 나의 성적지향을 포함한 나의 정체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줄 수 있는 관계들 외의 많은 인간관계들이 점점 어려워지고, 희미해지고, 사라져 간다. 참 억울한 일이다. 내가 성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불편한 관계들이 많아지는 사회라니. 헤테로라면 생각도 해본 적 없는 고민일 텐데 말이다.
나이가 서른쯤 되면 보통의 게이들은 주변에 커밍아웃을 하고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줄 수 있는 소중한 소수의 친구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한국 사회의 분위기 상 “여러분, 저 게이예요! 저는 남자를 좋아하는 남자이니 앞으로 저에게는 여자친구가 아니라 남자친구가 있는지 물어봐주세요!(찡긋)”하면서 행복하게 커밍아웃하는 사람은 없으니 말이다. 그러니 오래된 믿을만한 친구, 오래 보고 싶은 소중한 친구에게 커밍아웃을 하고 나의 성적지향을 알게 되는 친구들과 관계의 농도가 점점 진해진다. 그렇게 나의 안식처가 마련되면 그 안에서 겨우 숨통이 트이고 남들은 일찍부터 당연하게 누리고 있었던 자유로움을 조금씩 느끼게 된다. 수년간 막혀있던 무언가가 뚫리는 그 상쾌한 느낌. 한 번도 자유롭게 해보지 못했던 이야기들. 게이로 살아오면서 겪은 고충부터 아무에게도 들려준 적 없이 혼자 웃고 울어 답답했던 지난 연애들에 대한 이야기, 요즘 눈이 가는 남자 연예인같이 가벼운 얘기까지.
퇴근하기 전 한 직장동료가 나에게 와서 묻는다. “오늘 회사 끝나고 다 같이 밥 먹으러 가기로 했는데 OO도 올래요?” 질문을 듣고 대답하는데 걸리는 짧은 순간, 그 찰나의 순간 속 나는 어쩌면 내가 겪게 될 수도 있는 불편한 가상의 미래들을 떠올려본다. “저 오늘 약속이 있어서요. 아쉽네요. 다음에 같이 해요!” 나는 오늘도 없는 약속을 1초 만에 만들어내고는 불편한 상황을 마주하는 것보다는 집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는 편이 낫다고 나를 위로한다. 나의 호텔에 그들을 위한 방은 아직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