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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아민 Jun 20. 2024

거꾸로 보는 그림

뭐부터 말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일단 저 각진 틀은 내가 밖인지 안인지 알 수 없게 만든다

흙의 색을 갖고 있는 저 창틀은 언제든 물에 닿아 무너질 수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다면 비 온 뒤의 땅이 더 굳듯이 저 틀도 깨질 수가 없다

틀 밑, 풀의 색을 지닌 저 바닥 때문에 내가 안인지 밖인지를 더욱 알 수 없다

그렇게 혼란스러운 곳에서 자라난 나무가 우리다

풀과 자라는 나무가 정상적으로 보이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

저 틀을 보는 우리가 피워낸 잎은 탁한 초록색이고 그 속에서 피어난 꽃은 선명한 붉은 색이다

이상할 게 없다

다시 한 번 말하자면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정상적인 우리가 자란 것처럼 보인다

거꾸로 보는 그림


그래서 우리는 이 그림을 뒤집어 봐야 한다

우리가 피워낸 잎은 우리의 귀, 잎이 피워낸 꽃은 귀에서 흐르는 피

귀와 이어지는 동그란 잎의 뿌리는 뇌와 같다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그림이다

예민한 사람들은 세상의 모든 것을 정보로 인식하여 뇌로 보내고

그것으로 타인을 위한 여러가지 자아를 만들어 낸다

그래서 우리의 귀는 항상 피흘리고, 탁하고, 검게 갇혀 있다

그럼에도 창 너머의 타인은 우리의 여러 밝은 페르소나만을 볼 수 있다

투박하고 혼잡하고 검은 부분이 여러 밝은 부분에 침투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알아차리기는 어렵다

창 틀의 경계진 저 부분은

우리가 경계를 알고 그것을 깨는 순간 안이든 밖이든 모든 곳이 밖이고

우리가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우리도 알지만

저 경계는 하얗다

순수함이라는 편견 때문에 경계를 깰 수 없게되는 것이다

착한 아이 콤플렉스를 깨고 싶어도 깰 수 없는,

가면을 쓰고 싶지 않아도 여러가지 모습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가 우리의 따뜻함은 거짓이고 허상이라 생각한다는 것이다

페르소나들 전, 검고 추한 진심 전, 우리보다도 더 뒤에는 햇살의 색이 존재는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선함이 밖으로 내비추어 질 때,

누군가가 나에게도 선천적 다정함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었기에

우리가 틀을 깨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림을 뒤집어 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뒤의 따뜻한 색을 우리가 스스로 앞에서 지켜주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남은 나를 향한 나의 애정이다


검은 진심과 섞여 색을 알아볼 수도 없는 부분이 있는 것처럼

검기만 한 부분도 있고 밝기만 한 부분도 있고 아무 색이 없는 부분도 있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를 선과 악에서 나눌 수 없지만

타인은 우리가 선하기를 바란다는 것만은 알고 있다

틀을 깨면 밝기만 한 나를 볼 수 있을 것 같고

모든 곳이 밖이 되어 무언가를 숨기지 않아도 될 것 같지만

해가 뜨려는 건지, 지려는 건지, 해가 있기는 한 건지

알 수 없는 혼탁한 세상을 본 우리는

그림이 아닌 부분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이 찢어지고 망가진 것처럼

이미 아물 수 없는 상처들이 있다

내가 나를 벗어나야만 보이는 상처들이

그래서 남에게도 말해 줄 수가 없다

나도 나를 벗어나야만 보이는 상처를

남이 존중해줄 수 없다고 생각하기에

#예민한사람을위한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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