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소식을 전한 지인이 내뱉은 말이다.
“요즘 낙이망우하며 살고 있어요”
낙이망우(樂而忘憂)
본래, 도(道)를 행(行)하기를 즐거워하여 가난 따위의 근심을 잊는다는 뜻의 한자성어다.
다시 말하면, 즐거움에 빠져서 근심을 잊는다는 뜻이다. 무언가에 몰입하거나 행복한 상태에 빠져 걱정이나 근심을 잊는 상태를 의미한다.
살아보니, 삶은 고행이다. 남녀노소, 빈부에 상관없이 사람은 저마다의 고통이 있다. 때에 따라 사람에 따라 다를 뿐, 몸이나 마음이 괴롭지 않은 인생은 없다.
삶의 괴로움에서 벗어나고자 사람들은 여러 가지 노력을 한다. 그중 반 구십이 넘어 깨달은 방법이 바로 ‘낙이망우’다. 배움을 통해 느끼는 즐거움으로 고통을 잊는 것이다. 중년의 배움은 학창 시절의 그것과는 다르다. 해야 하는 것이 아닌, 알고 싶고 하고 싶어서 자발적으로 배우는 것이다. 그 배움으로 얻는 것은 어린 시절 이루지 못한 꿈의 언저리에 다가가는 설렘 일 수도 있고, 새로운 세상을 발견하고 느끼는 경이로움 일 수도 있다.
천재 과학자라고 불렸던 아인슈타인의 뇌는 오히려 정상인의 평균 무게보다 덜 나갔다고 한다. 뇌의 주름도 단순해 일반인의 뇌와 비교했을 때 특별하지도 않았다.
아인슈타인은 말한다.
나에게는 특별한 재능 같은 건 없다.
다만 호기심이 굉장히 강할 뿐이다.
“특별한 재능이 없다”라는 겸손함 뒤에는 자신을 끊임없이 새로운 질문으로 이끄는 호기심과 세상을 이해하려는 열망이 있었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늙지 않는다. 단순히 시간의 흐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의 영원한 젊음을 뜻한다. 그 호기심 어린 시선은 그를 ‘영원한 아이’로 남게 했을 것이다.
삶의 고통 속에서도
호기심과 열린 마음을 간직하고 배움에 도전하며 사는 것.
그 과정에서 새롭게 발견한 나와 세상.
반 구십에 깨달은 즐거움, ‘ 낙이망우의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