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는 비둘기똥과 개똥 때문에, 베를린에서는 자전거 도로 때문에.
얼마 전 끝난 파리 올림픽을 보며, 아름다웠던 파리에서의 생활이 문득 떠올랐다. 그와 동시에 떠오른 생각은 아름답고 낭만적인 것만큼이나 꽤나 더러웠던 파리의 거리였다. 이번 올림픽 때 센느강에서 개최된 철인3종 경기와 오픈워터 수영 경기에 참가한 선수들이 경기 후 위장병에 걸렸다는 이야기와 경기 후 구역질을 하던 선수의 모습이 화제가 되었다. 센느 강을 거닐 때 진하게 풍겨오던 악취와 거리를 장악한 개똥과 비둘기똥이 절로 떠올랐다.
베를린은 곳곳에 있는 쓰레기통과 독일인의 투철한 준법정신으로 대도시치고 쓰레기가 많은 편은 아니다. 그렇다고 그닥 깨끗하다고 볼 수도 없다. 여담이지만, 도로청소를 꽤나 자주하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베를린은 도로청소가 잘 안되어 있어서 샌달만 신고 나갔다 오면 발이 새까맣다. 나무에서 떨어지는 잎과 담배꽁초, 정체를 알수 없는 물질(?)들이 도로를 이리저리 휩쓸고 다닌다. 주변 독일인들에게 물어보니, 도로청소를 할 인력이 부족하여 일부의 도로에서만 도로청소가 이루어진다고 한다.
내 기준에서 베를린에서는 다른 걸 더 조심해야 한다. 바로 자전거 도로이다.
베를리너라면 누구나 애용하는 자전거. 도보를 걷다보면 자전거 도로와 인도로 나누어진 경우가 많다. 차도에 자전거 도로가 함께 있는 경우도 많지만 그에 못지 않게 인도에 자전거 도로가 나있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후자의 경우인데, 자전거 도로에서 걷거나 서 있다면 베를리너들의 무자비한 고함소리와 쉴새없는 벨소리를 경험할 수 있다. 만약 에어팟의 노이즈캔슬링으로 아무런 소리도 듣지 못한채 자전거 도로를 걷게 된다? 생각만해도 아찔한 시나리오다.
나도 처음에는 자전거 도로에서 걷거나 혹은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자전거 도로 한 가운데에 서 있던 (베를리너 입장에서 보면) 엄청난 실수를 종종하곤 했다.
이게 얼마나 큰 실수냐면 유럽인 중에서도 꽤나 점잖은 편에 속하는 독일인들도 자전거 도로에서 우물쭈물하고 있는 사람을 보면 비키라고 고함을 지를 정도이니, 이건 마치 차가 다니는 도로 한복판에 사람이 신호를 무시하고 서 있는 것 과 같은 수준의 결례 혹은 '룰을 무시하는 행동'이다.
얼마 전 인적이 드문 공원 옆 거리를 걷다가 생긴 일이다. 횡단보도를 건너고 인도로 진입하는 순간, 왼쪽의 붉은 색 도로와 오른쪽 회색도로를 두고 고민에 휩싸였다. '어느 것이 자전거 도로이고, 어느 것이 인도인가'. 아무런 표시도 없고 심지어 지나다니는 사람조차 없었다. 고민하며 우물쭈물 거리는 사이 뒤에서 자전거 두 대가 나타났다. 나를 향해 오는 그들을 피해 오른쪽으로 이동했다. 앞서 가던 자전거의 한 여자가 나를 지나치다가 잠시 세우더니 나를 돌아보며 영어로 '붉은 벽돌은 자전거 도로이고, 오른쪽이 인도야' 라고 말해주었다.
두 개의 도로를 보며 고민하던 나의 모습을 본 것일까. 너무나 친절하게도 말해주는 그녀를 보며 다시 한번 느꼈다. 룰이 중요한 독일인들은 룰을 지키려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친절하구나. 다시 한번 느꼈다. 새로운 곳에 왔을 땐 늘 눈을 크게 뜨고 로컬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관찰하고, 그들의 문화와 규범에 맞게 행동하려 늘 노력해야 한다.
어느 덧 이젠 익숙해져서 자전거 도로는 무의식중에 피하며 걷게 되지만, 베를린에 오시는 분들에게는 꼭 이 말씀을 드리고 싶다. 땅을 잘 보고, 자전거 도로는 피해 걸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