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에서의 아침은 그날의 일기예보를 확인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창밖을 보니 하늘이 낮게 내려와 있었다. 오후에 비 소식이 있었다.
에든버러성에 가려고 숙소를 나와 무심히 뒤를 돌아봤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사람이 사는 동네 맞나 싶은 이 그로테스크함. 유령이 사는 마을이라고 해도 이상할 것 하나 없는 바이브. 왜 으스스한 도시라는 수사가 붙었는지 바로 이해됐다.
교통권은 따로 구입하지 않았다. 웬만한 곳은 도보로 가능하고 버스 티켓은 운전기사에게 직접 구입하면 됐다. 버스 1회권이 2파운드(약 3,600원)로 한국의 교통비와 비교하면 입이 벌어지는 가격이었지만 암스테르담 1회권이 3.4유로(약 5,100원)였던 것을 감안하면 납득할만한 가격.
빨간색 2층 버스를 타고 에든버러성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는 도로에 내렸다. 도로를 끼고 스코틀랜드 국립미술관이 있었다. 스코틀랜드는 국방과 외교를 제외한 모든 자치권을 갖고 있어 공공기관으로 보이는 건물에는 국립 스코틀랜드라는 표기가 붙어 있었다. 국립미술관 옆으로 연초록의 잔디와 나무들이 넓게 자리한 프린스 스트리트 가든이 이어졌다. 프린스 스트리트 가든은 짙은 브라운과 잿빛 도시에 생동감을 불어넣고 있었다.
프린스 스트리트 가든
국립미술관 앞에서 스코틀랜드 남성의 전통 복장인 킬트를 입은 여성이 백파이프 연주를 하고 있었다. 킬트를 보면 여중생 시절의 한때가 떠오른다. 남성복인 킬트가 치마인 것을 알고 친구들끼리 얼마나 웃었던지. 낙엽 굴러가는 것만 봐도 웃는다는 시절이었다.
에든버러성으로 오르는 언덕에 흡사 호그와트의 마법학교인가 싶은 대단한 아우라의 건물이 보였다. 바로 에든버러 대학이었는데 건물을 이루고 있는 벽돌마다 다채로운 그라데이션을 갖고 있어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실존인가 싶을 만큼 오묘하고 신비로웠다.
에든버러 대학교
학교 앞을 지나는데 입구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자세히 보니 크라운이 붙은 차 한 대가 세워져 있고 경호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주위를 통제하고 있었다. 로열패밀리가 학교를 방문한 모양이었다. 누굴까 궁금해서 사람들 사이에서 잠시 기다려봤으나 언제 나올지 알 수가 없어 우리는 에든버러성을 향해 다시 킵 고잉.
캐슬락 위에 자리 잡은 에든버러성에 오르니 시야가 뻥 뚫리며 시원하게 도시가 내려다보였다. 도시를 수비하기 위한 최적의 위치인 듯했다. 돌과 벽돌로 축성된 성채는 매우 단단해 보였는데 6세기에 세워진 성은 꾸준히 증축되며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그레이트홀에는 스코틀랜드의 독립을 상징하며 왕의 대관식 때 사용했던 운명의 돌이 있다고 했다. 1707년 UK에 속하기 전까지 스코틀랜드는 독립된 국가였다. 영국사를 읽다 보면 끊임없이 영국과 전쟁을 치렀던 스코틀랜드의 지난한 역사를 보게 된다.
에든버러성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세인트 마거릿 예배당에 들어섰다. 12세기에 건축된 예배당은 마치 작은 동굴 같았다. 왕실 예배당이라고 하기엔 몹시 소박했는데 오히려 간결함과 소박함에서 영성과 거룩함이 배어져 나왔다.
예배당을 나오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성과 뮤지엄을 둘러보고 천천히 성을 내려오는데 한차례 대포 소리가 울렸다. 일요일을 제외한 매일 오후 1시에 성에서 쏘는 대포 소리였다.
에든버러성에서 홀리루드 궁전까지의 길을 로열마일이라고 한다. 과거에 왕가 전용도로였던 곳으로 평민은 발도 들일수 없었다고 한다. 비가 내려 도시가 어둑어둑해지자 노란 백열등을 켜 놓은 듯한 아련함이 거리에 스며들었다. 하.. 절로 감성이 차오를듯한 도시 분위기라니. 마치 마법 속을 거니는 듯했다.
길을 걷다 LADY STAIR'S CLOSE라는 골목이 있어 골목을 따라 내려가 봤다. 건물들이 대체로 벽을 맞대고 붙어있다 보니 건물 사이에 이렇듯 미로 같은 길을 내어 뒷길로 통하게 해 놓았다. 오랜 세월 터를 지켜 온 건물들이 만들어내는 묵직한 공기가 건물들 사이로 흘렀다.
조앤K. 롤링이 <해리포터>를 쓰느라 앉아있었다는 카페 엘리펀트 하우스를 찾아보았다. 하지만 카페의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해리포터>의 표지 앞날개에는 '결혼했으나 곧 이혼하고 생후 4개월 된 딸을 안고 에든버러에 초라한 방 한 칸을 얻어 정착했다. 일자리가 없어 1년여 동안 생활 보조금으로 연명한 그녀는 동화 쓰기를 결심, 집 근처 카페에서 해리포터의 모험담을 종이 위에 옮겼다.'라고 쓰여 있다. 바로 그 카페였다.
카페 엘리펀트
거리에는 간간히 작은 서점들이 보였다. 한국에서는 이미 변화의 속도에 밀려 온라인 세계로 들어가 버리거나 사라진 서점들이었다.
결혼 전 직장 근처에 있는 작은 서점에 거의 매일 가다시피 했었다. 점심시간에도 잠깐 들러 신간을 살펴보고 주문해 둔 책을 찾곤 했다. 그 시간이 마음에 틈을 내주어 잔잔한 행복을 느끼곤 했었는데. 사라져서 아쉬운 것 중 하나가 작은 서점들이다.
빗줄기가 조금씩 굵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유럽 사람들.. 예보가 있었는데도 우산도 안 쓰고 그렇다고 뛰지도 않는 심리는 뭘까. 게으른 거야 내추럴한 거야. 오히려 우산을 쓴 사람이 유난해 보이는 시추에이션은 뭐람.
점심때가 지난 데다가 비까지 내려 기온이 떨어지니 뜨끈한 국물이 그리웠다. 마침 근처에 한식당이 몇 개 검색됐다.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한식당 Kims mini meals에서 오랜만에 한식을 먹었다. 김치찌개와 해물순두부라니. 국물 한 방울까지 말끔하게 비우고 나니 온몸으로 따뜻한 온기가 퍼졌다.
숙소로 돌아오는 버스의 2층으로 올라가 앉았다. 기온차이로 차창에 뿌옇게 김이 서렸다. 낮술을 한 잔 한 것도 아닌데 묘하게몽롱한 기분에 휩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