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접시 위에 수북하게 바스러져 있는 스콘 부스러기를 티스푼으로 모아 입에 털어 넣었다. 하~ 귓불이 화끈하고 뒤꼭지가 당겼다. 스콘을 작게 떼어서 잼과 클로티드 크림을 발라 먹는데 스콘이 쉽게 부서지는 바람에 부스러기로 많이 떨어져 나가긴 했다. 크림과 잼도 절반 이상이 남았다. 아니 그렇다고 빵 부스러기를 티스푼으로 먹을 것 까지야.
스콘은 하나인데 함께 서빙된 클로티드 크림과 잼의 양이 상대적으로 많다고 생각하던 중 옆 테이블의 여성이 나이프를 이용해 스콘을 가로로 이등분한 다음 잼을 넓게 펴 바르고 그 위에 클로티드 크림을 듬뿍 바른 후 손으로 들고 먹었다. 아하! 긴 나이프가 왜 필요하지 싶었는데 그래서 함께 나왔던 것이로군. 먹는 방법이 문제였네.
스콘의 고향에 왔으니 크림티와 스콘을 먹기 위해 칼튼힐에서 내려와 빗속을 걸어 평점이 만점에 가까운 티룸을 찾아간 터였다.
(*잼이 먼저냐 크림이 먼저냐는 우리네 부먹찍먹 논쟁과 비슷하다는 썰이 있다. 현재는 잼 먼저가 대세)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은 스코틀랜드의 스콘이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드럽다고 했다.쉽게 부서질 수 있다는 뜻.
스콘의 어원을 찾아보면 두어 가지가 검색되는데, 스코틀랜드의 독립을 상징하며 왕의 대관식 때 썼던 바로 그 돌을 가리키는 ‘stone of scone’에서 유래됐다는 것도 그중의 하나다. 스콘의 본고장이 스코틀랜드이니 꽤 설득력이 있었다.
에든버러에 도착한 날 일기예보를 확인했을 때 에든버러 일대에 홍수경보가 발령 중이었다.비는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홍수경보는 3일째 이어지고 있었다.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2층에 있는 숙소에서 내려다보니 역시 비가 세차게 내리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사람들은 모자나 후드만을 쓴 채 길을 갔다. 반려견들도 예외 없이 비를 맞으며 함께 걸었다. 비가 많은 도시라고 우산장사를 했다간 망하기 십상인 곳이다.
오전 11시가 다 되어 가까운 칼튼힐과 홀리루드 궁전만 보고 오자고 숙소를 나섰다. 빗줄기는 굵어졌다 가늘어졌다를 반복하며 쉬지 않고 내렸다. 숙소에서 10분 정도를 걸으니 칼튼힐로 올라가는 길이 보였다. 야트막한 산길을 걸어 칼튼힐에 도착해 보니 사방이 탁 트인 산마루다. 그러나 비가 몰고 온 구름과 안개에 가려 시야는 멀리 나아가지 못했다. 북해가 보여야 마땅하고 올드타운이며 에든버러성까지 파노라마처럼 펼쳐져야 마땅했건만. 많은 사람들이 찾는 장소임에도 비를 뚫고 올라온 몇몇 관광객들만 있었다.
칼튼힐을 지나는 비바람에 안개가 흩어졌다 모였다 하며 신비한 풍경을 자아냈다. 칼튼힐에는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을 본떠 만든 국가기념물과 트라팔가 해전으로 유명한 넬슨의 기념탑, 옛 천문대 등 중요한 기념물들이 모여 있었다. 동쪽으로는 노란 꽃나무들이 양탄자처럼 깔린 홀리루드 파크가 손에 잡힐 듯이 보였다. 칼튼힐도 홀리루드 파크도 화산으로 만들어진 해발 200미터가 안 되는 비산비야 같은 곳이다.
칼튼힐에서 내려와 티룸에 들러 따뜻한 크림티와 (그 문제적ㅋ)스콘을먹었다. 평점과 리뷰에서 느낄 수 있었지만 티룸은그 빗속에도 웨이팅이 있을 만큼 인기가 있었다. 실내는엔틱하고 아늑했다.
티룸에서 나와 다시 빗속을 걸어 홀리루드 궁전과 홀리루드파크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방향을 가리지 않고 우산 속으로 파고드는 비에 이미 신발도 겉옷도 흠뻑 젖은 상태였다. 홀리루드 궁전을 돌아 홀리루드 파크 언덕으로 올라갔다.
언덕길은 두 개로 갈라지며 ‘아서의 의자’로 가는 팻말이 보였다. 노란 꽃들이 만발한 언덕으로 넘어가는 산길이 안개에 싸여 있어 호기심을 자극했다. 산을 좋아하는 남편의 걸음이 빗속에서도 빨라지는 게 느껴졌다. 빠른 걸음으로 앞서가는 남편을 불러 내려가자고 말을 하면서도 내 마음도 흔들렸다. 하지만 아무리 비산비야라고 해도 초행인 데다 이 악천후에 이미 비에 흠뻑 젖은 채로 욕심을 내는 것은 무리였다. 마음을 내려놓고 돌아섰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하루종일 비가 내리니 일찍 숙소로 돌아가 쉬기로 했다. 여행을 시작한 지 열흘이 넘어가고 있었다. 숙소 앞 마트에서 간단히 장을 봤다. 비 덕분에 마음도 녹진해져서 이른 저녁을 준비해 맥주를 곁들였다. 이런 저녁, 알코올과의페어링은 언제나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