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서기: (응신천황) 25년 백제의 직지-왕[直支-王]이 죽었다[薨]. (應神天皇)二十五年百濟直支王薨
삼국사기 백제본기 주석 인용 어떤 기록: <(전지-왕을) 직지(-왕)[直支]라고 하였다.> (腆支王)<或云直支>
삼국사기 백제본기: 전지-왕[腆支-王]은 아신(-왕)[阿莘]의 첫아들[元子]이었다. 腆支王阿莘之元子
일본서기 주석 인용 백제기: <아화-왕[阿花-王]이 서서 귀-국[貴-國]에게 예를 갖춤이 없었으며, 그리하여 (귀-국이) 우리[我]의 침미다례枕彌多禮, 현남峴南, 지침支侵, 곡-나[谷-那], 동-한[東-韓]의 땅을 빼앗으니, 이리하여 (아화-왕이) 왕자王子 직지直支를 조정[天朝]에 보냈다.> <百濟記云阿花王立无禮於貴國故奪我枕彌多禮及峴南支侵谷那東韓之地是以遣王子直支于天朝>
일본서기: (응신천황 03년 겨울 11월) (이 해) 키-츠누-스쿠네[紀-角-宿禰] 등이 이어 아화阿花를 세우니, (아화가) 왕이 되었다. (키-츠누-스쿠네 등이) (백제에서) 돌아왔다. (應神天皇三年冬十一月)(是歲)紀角宿禰等便立阿花爲王而歸
삼국사기 백제본기: (진사왕) 08년 (진사-왕[辰斯-王]이) 죽었다. (왕의) 자리에 올랐다. 八年薨即位
삼국사기 백제본기: (진사왕 08년 겨울) 11월 왕이 구-원[狗-原]의 행궁行宮에서 죽었다[薨]. (辰斯王八年冬)十一月薨於狗原行宮
삼국사기 백제본기: (아화왕 14년) 가을 09월 왕이 죽었다[薨]. (阿幸王十四年)秋九月王薨
일본서기: (응신천황 16년 봄 02월) 이 해 백제 아화-왕[阿花-王]이 죽었다[薨]. 천황이 직지-왕[直支-王]을 불러 그 일[之](=아화-왕이 죽었음)을 이르고, 말하기를 "네[汝]가 국國에 돌아가 (왕의) 자리를 잇도록[嗣] 해라."라고 하였다. (천황이) 이어 또한 동-한[東-韓]의 땅들을 (직지-왕에게) 내려주고, 그를(=직지-왕을) 보냈다. (應神天皇十六年春二月)是歲百濟阿花王薨天皇召直支王謂之曰汝返於國以嗣位仍且賜東韓之地而遣之
삼국사기 백제본기: 아화(-왕)[阿莘]이 (왕의) 자리에 있은지 제03년 세워 (왕)태자太子로 삼았다. 阿莘在位第三年立爲太子
삼국사기 백제본기: (아화왕) 06년 (왕태자[太子]가) 나가 왜-국[倭-國]에서 볼모[質]가 되었다. (阿莘王)六年出質於倭國
삼국사기 백제본기: (아화왕) 14년 왕이 죽었다. 왕의 가운데[仲] 아우[弟] 훈해訓解가 다스림을 맡아[攝政] (왕)태자太子가 국國으로 돌아옴을 기다리도록 하였다. (왕의) 막내[季] 아우[弟] 접례碟禮가 훈해訓解를 죽이고 스스로 서서 왕이 되었다. (阿莘王)十四年王薨王仲弟訓解攝政以待太子還國季弟碟禮殺訓解自立爲王
삼국사기 백제본기: (아화왕) 14년 봄 03월 흰색 기운이 왕王의 궁宮의 서쪽으로부터 일어나니, (흰색 기운은) (1)필 비단같았다. (阿幸王)十四年春三月白氣自王宮西起如匹練
삼국사기 백제본기: (전지왕) 16년 봄 03월 왕이 죽었다[薨]. (腆支王)十六年春三月王薨
일본서기: (응신천황 39년 봄 02월) 백제 직지-왕이 그 여자아우[妹] 신-제도-원[新齊都-媛]을 보내며 명령하여 (신-제도-원이) (천조에서) 신하 노릇하도록[仕] 하였다. 이어 신-제도-원이 7(명) 남편있는 여자들[婦女]을 거느렸으며, (신-제도-원과 여자들이) 와서 따랐다. (應神天皇三十九年春二月)百濟直支王遣其妹新齊都媛以令仕爰新齊都媛率七婦女而來歸焉
삼국사기 백제본기: (전지왕) 14년 여름 (왕이) 왜-국[倭-國]에 사신을 보내니 (사신이) 백-면-십필[白-綿-十匹]을 보내주었다. (腆支王)十四年夏遣使倭國送白綿十匹
삼국사기 백제본기: (구이신왕) 08년 겨울 12월 왕이 죽었다[薨]. (久尔辛王)八年冬十二月王薨
삼국사기 백제본기: (비유왕 02년 봄 02월) 왜-국[倭-國]이 사신을 보내니 (사신이) 이르렀는데 (사신을) 따르는 (왜-국[倭-國]) 사람들이 50명[人]이었다. (毗有王二年春二月)倭國使至從者五十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