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살펴본 자료들의 구절들 가운데 이해가 필요한 것들을 하나씩 살펴보지요. 충돌하는 듯한 구절들이, 이해하거나 또는 잘못을 바로잡고 보면 실은 그렇지 않음을 알아봅시다. 물론 잘못을 바로잡을 때는 그렇게 함이 타당함을 보여주는 근거, 다른 자료를 필요로 합니다.
위서는 단-군이 아사달에 도읍한 일을 요와 같은 때[同時][B:⑦]의 일이라고 적었습니다. 반면, 옛 기록은 단-군이 아사달에 도읍한 일을 요 50년[A:②] 경인-년[A:③]에 평양-성에 도읍하였던 일보다 뒤에 적었습니다.
옛 기록을 통하여 바라보면, 단-군이 아사달에 도읍한 시점은 요 01년보다 뒤이고 따라서 같은 시점이 아닙니다. 따라서 위서가 적은 같은 때[同時]란 같은 시점時點이 아니라 같은 시기時期 - 시간 범위를 뜻하지요. 이 구절은 요가 활동하던 시기와 왕검이 아사달에 도읍한 시기가 겹쳐있었다는 뜻이지, 왕검 01년이 요 01년이었다는 뜻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다시 반대로 위서를 통하여 옛 기록을 바라보면, 요와 같은 시기[B:⑦]에 활동하였다는 단-군이 처음 도읍한 시점은 요 01년이라는 시점과 50년[A:②]이나 떨어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연적인 세대 간격 30해/세대보다 1.5배 이상 떨어진 두 시점들이 같은 시기 곧 같은 주활동시기에 겹쳐있다고 보기 어렵지요. 이 부분에서 기록들은충돌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옛 기록은 단-군이 평양-성에 도읍한 시점을 요 50년이라고 적었는데 이 시점에 대해 또한 경인이라는 간지를 함께 적었습니다. 그런데, 같은 방식으로 요가 제가 된 뒤의 시점과 간지를 함께 적은 문자 자료가 있으니 이른바 죽서기년이라고 부르는 것이 그것입니다. 이 자료는 현재는 따로 온전하게 전하지 않고 보다 뒤의 여러 자료들에 부분부분 인용되고 있을 뿐인데, 그 가운데 수서 율력지가 인용한 죽서기년은 요 01년[元年]은 간지가 병자인 해였다[D-1:①]고 적고 있습니다.
D-1 수서 율력지 인용 죽서기년: ① 요堯 01년[元年]은 병자丙子(-년)[景子]이었다. (竹書紀年曰)①堯元年景子
죽서기년의 요 01년으로부터 세어보면, 간지가 경인인 해는 요 15년이 됩니다. 이 시점을 옛 기록은 요 50년이라고 적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두 가지 시점의 한문을 보면 바로 알 수 있듯이, 50[五十]과 15[十五]는 十과 五를 위에서 아래로 적으면서 글자 순서를 뒤집어 적은 것입니다.
어느 쪽이 본래의 것이었을까요? 두 가지 시점 가운데 15년은 50년과 달리 자연적인 세대 간격 30해/세대보다 짧으니, 요 01년과 같은 시기에 포함된다고 보아도 무리가 없습니다. 따라서 죽서기년과 위서를 통해 바라보면 옛 기록의 간지가 경인인 때로 보다 적합한 것은 요 50년이 아니라 요 15년입니다.
그리하여 바로잡으면, 옛 기록의 A:①-③은 요 50년이 아니라 15년 단-군이 평양-성에 도읍한 일을 적은 것이 됩니다. 위서의 B:⑦은 단-군이 아사달에 도읍하였던 시기가, 14년 앞서 다스림을 시작하였던 요가활동하던 시기와겹쳐있다고 적은 것이 됩니다.
이렇게하여, 옛 기록과 위서가 충돌하는 듯 보이던 부분 하나가 간단히 사라졌습니다. 더하여, 새로운 자료죽서기년 또한옛 기록, 위서와 충돌하지 않고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