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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이야기

죽은 자에 대한 예의

처음부터 괴물로 태어나는 아이는 없다

by 정현숙

"나쁜 일 있을 때 거기에 애가 있다. 무조건 그 애가 제일 큰 피해자야"


12화 연재 글(엄마,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까)에 달린 소리글 작가님의 댓글을 읽고 나서 드라마 '사마귀:살인자의 외출'을 이번 추석연휴기간 동안 정주행했다.


나는 원래 범죄스릴러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현실에서 마주하는 사건들이 더 잔혹하고 역겨울 때가 부지기수다.

기록 속 쌓여있는 범죄현장 사진, 부검사진, 동영상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늘 내 한계치를 초과한다.


임관 2년 차에 형사합의부 배석을 하면서 처음으로 살인사건 기록을 보게 되었다.

처음에 멋도 모르고 살인 사건의 기록을 여느 기록들과 마찬가지로 살펴봤는데 부검사진이 붙어있던 면이 사진의 무게 때문에 저절로 내 눈앞에 툭 펼쳐졌다.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를 뻔했다.

분명 사람인데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영혼이 빠져나간 육신은 한낱 고깃덩이에 불과하다지만 부검대 위에서 찍힌 사진들은 내가 이제껏 상상해 온 그 어떠한 것들로도 형언할 수 없는 형상들이었다.

그날 밤 악몽을 꾸었고 가위에 눌렸다.


고백하건대 그때부터 사진들을 보지 못했다.

살인 사건의 기록들을 검토할 때는 먼저 증거목록에서 부검사진 쪽수를 확인한 뒤 그 부분이 펼쳐지지 않도록 집게로 꾹 집어 두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것을 보지 않아도 충분히 다른 증거자료로도 판단이 가능하다고 생각했고 실제로도 가능했다.

피고인이 살인자라는 증거는 늘 차고 넘쳤다.


그런데 법정에 푸른 수의를 입고 손에 수갑을 찬 채 포승줄에 묶여 꾸부정하게 나오는 피고인은 도저히 기록 속에 나오는 그 쳐 죽여도 시원찮을 나쁜 놈과 같은 인물이라 볼 수 없을 정도로 연약해 보였다.

그의 변호인은 그가 가진 가슴미어지게 슬프고도 아픈 서사들을 구구절절 풀어낸다.

피고인들의 주변에는 십중팔구 드라마 사마귀 속 정이신의 아버지나 남편 같은 인물, 서아라의 아버지 같은 악독하고도 폭력적인 인물들이 있었다.

그 인고의 세월을 거쳐 살아온 피고인이 자신이 모든 것을 잘못했다고 울며 수갑을 찬 두 손으로 흐르는 눈물을 연신 닦아낸다.

살인사건 피고인 중 눈물의 서사가 없는 피고인은 없었다.


대문자 F 성향인 나는 늘 고역이었다.

정이신의 표현의 빌리자면 측은지심이었을까.

나의 눈에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이미 눈물이 무겁게 담겨있었다.

그러나 법대에서 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 나는 한번 제대로 꽂혀서 울기 시작하면 콧물까지 쏟으며 볼품없이 엉엉 울어재끼는 성향이라 더더욱 울음은 금물이었다(여리여리하고 애잔하게 한줄기 눈물을 또르르 흘려보는 게 지금도 꿈이다).

눈물을 그대로 담고만 있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눈물의 무게가 그렇게나 무거운 것인지 그때 처음 알았다.


그러던 어느 날 피고인을 엄벌에 처해달라며 눈물짓던 망인의 유가족들이 눈에 들어왔다.

정신이 퍼뜩 들었다.

현실의 피해자들은 드라마 사마귀 속 정이신이 죽인 사람들처럼 가정폭력, 아동폭력을 자행하는 죽어 마땅한 쓰레기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불현듯 내가 피고인만을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살아있는 피고인이 법정에서 손을 벌벌 떨며 잘못했다고 말하는 모습을 보며 측은지심으로 불쌍히 여기고 눈물을 글썽였을 뿐, 그 손에 죽어간 이에 대하여는 사진 한 장 들여다보는 것마저 나는 끝끝내 거부해 왔었던 것이다.

자신이 왜 죽었는지를 죽은 몸으로 말할 수밖에 없는 그들의 소리를 외면했었다.

그래서 용기를 냈다. 보기로...

그들이 몸으로 말하는 소리를 듣기로...

그것이 판사인 내가 피고인의 손에 죽어간 피해자인 망인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일 것이므로.


처음에는 너무너무너무 힘들었다. 고통스러웠다.

다시 덮고 싶었다.

그럴 때마다 생각했다.

피고인은 살아있지 않은가.

그래서 제 입으로 판사 앞에 나와서 잘못했다 말하고 눈물 흘리며 용서를 빌 수 있지 않은가.

죽은 자는 소리를 낼 수 없다. 그러니 내가 봐주어야 한다.

그렇게 버티고 버티고 버텼다.

그랬더니 악몽을 꾸지는 않게 되었고 화들짝 놀라지는 않을 정도의 수준까지는 이르게 되었다.


형사합의부를 떠난 지 20년 가까이 되어서 그 이후에는 살인사건 기록을 본일은 없다.

그러나 요즘 변사자 부검영장을 처리하면서 변사체 사진 등을 힘들지 않게 볼 수 있는 역량이 있는 것으로 봐선 다행히 그 내공이 어디 도망가지 않고 잘 축적되어 있는 것 같다.


그래도 살인사건은 맡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피고인들에게도 가슴 절절한 서사가 있고 피해자들에게는 미칠듯하게 애절한 서사가 있기 때문이다.

다른 누군가의 삶의 역사 속에 들어간다는 것은, 그 속에서 허우적거린다는 것은 참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다.

판사도 법복을 입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법복의 무게가 더 한량없이 무거워 눈물의 무게를 그저 감당하고 있을 뿐.


드라마 사마귀를 보는 내내 너무 힘들었다.

이제는 기록 속의 사진은 의연하게 볼 수 있는 수준이 되었는데, 사람이 덧입혀지는 드라마나 영화는 보는 것은 여전히 너무 힘들다. 그래서 딴일을 하면서 정신을 팔고 봤다.


사마귀의 모방범이 여자라고 나오는 지점부터는 서아라(강연중)가 범인이겠다는 느낌이 왔다.

그러나 정이신의 아버지 정현남의 과거는 뒤통수였다.


완벽한 만악의 근원이었다.

자신의 딸을 성추행(인지 성폭행인지 성폭력인지는 드라마상으로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아 이 죽일 놈의 직업병...)하려다 아내한테 들켜서 아내를 목 조른 뒤 집에 불을 놓았다.

그리고는 딸에게 엄마가 없으니 엄마노릇을 하라며 성폭행을 자행했다.

거짓 목사가 되어 교회를 세운 뒤 여자 아이들을 돌보며 자신의 변태 성욕을 해소해 온 것으로 보인다.

정이신은 그런 아버지 때문에, 그런 삶을 산, 그런 가엾은 피해자로 마지막 화에서 부각되었다.


이 드라마 1화에서 내 마음에 큰 울림을 준 대사가 있었다.

바로 이 글 제일 처음에 나온 대사이다.

"나쁜 일 있을 때 거기에 애가 있다. 무조건 그 애가 제일 큰 피해자야"

내가 평소에 지향하는 바와 완전히 맞닿아 있는 이 대사가 너무 좋아서 얼른 적어두었다.

드라마를 모두 본 이후에 이 말을 누가 했는지 생각나지 않아서 다시 찾아보았다.


그런데 이 말을 한 사람은 다름 아닌 정이신의 아버지인 정현남이었다. 소름이 돋았다.

왜냐하면 만악의 근원이기만 한 사람의 입에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말이기 때문이다.

아마 정현남에게도 드라마에서는 나오지 않은 서사가 있지 않았을까.

(그러나 드라마는 그렇게 전개되면 안 되겠지.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고 절대악을 물리치는 카타르시스도 없으니 말이다. 강연중도 있긴 했지만 결국 그자도 아동폭력의 피해자라는 면이 많이 부각되었기 때문에 이 드라마에서 절대악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정현남 역시 어릴 적 심각한 가정폭력, 아동폭력에 시달렸거나, 소아성애가 있는 것으로 보아 성적 착취나 변태적인 성폭력을 당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정현남이든, 정이신이든, 강연중이든 그런 과거가 있다고 하여 그들의 죄가 사해질 수는 없다.

하나님과 판사에게 용서를 구할 것이 아니라 피해자들에게 먼저 용서를 구해야 한다.


어찌 되었든 그들의 인생에 굽이굽이 서려진 한스런 서사가 마음이 아프다.

그런 환경에 살았다면 정상적인 삶을 살아내기 참 힘들었겠구나 여겨지는 측은지심.


처음부터 괴물로 태어나는 아이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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