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가 뭐길래(1)
왕년에 로라 좀 굴려본 여자
공부 얘길 한번 해 볼까 한다
사람들에게 직업이 판사라고 하면 제일 먼저 듣는 말이 '판사가 되려면 도대체 얼마나 공부를 많이 해야 하나, 얼마나 공부를 잘해야 하나'였다.
내가 미처 대답도 하기 전에 어릴 적부터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은 수재였을 거라 마음껏 상상의 나래들을 펼친다.
물론 주변에 그러한 동료들이 수두룩하긴 하다.
우리 집은 부유하지 않았다.
아빠는 밤늦도록 열심히 일하셨고
엄마도 밤늦도록 늘 부업을 했다.
검소하다 못해 주머니에 돈이 들어가면 절대 나오지 않던 엄마였는데 희한하게도 책 사주는 것에는 돈을 아끼지 않으셨던 듯하다.
먹고살기 바쁘니, 나이와 수준에 대한 고민 없이, 그냥 전집류를 사다 안겨주셨다. 그런 것들을 고민해서 사다 줄 능력도 여력도 안되셨을게다.
한국전래동화전집, 세계명작동화전집 등등의 전집들이 웅장하게 책꽂이에 자리 잡고 그 위용을 뽐냈다.
전집 속에 파묻혀 도장 깨듯 하나하나 읽어 나가는 것이 참 좋았다. 고등학교 국어책에 나오던 구운몽, 금오신화, 사씨남정기를 초등학교 3, 4학년 즈음에 읽기 시작해서 몇 번이나 읽었더랬다. 참 재미있었다.
글도 제법 잘 써서 글짓기대회나 독후감 대회를 나가면 곧잘 1등을 했다. 무난하면서 착실한 초등학생 시절을 보냈다.
그러다 중학교 입학 이후 사춘기의 꽃을 피웠다.
친구들과 노느라 매일 어둑해져서야 집에 들어갔다.
롤러스케이트장에 가서 열심히 로라를 굴려주고(양다리로 유려한 나선모양을 그리며 뒤로 타주는 기술은 기본이다), 옆학교 남중생과 미팅을 하기도 하였다.
미모가 없어 들러붙는 남자가 없었던 게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물론 술담배를 하거나 가출을 할 정도로 대범하지는 않았다.
그냥 깻잎머리하고 껌 좀 씹는 정도라고 해두겠다.
입담이 괜찮아서 오락부장은 늘 내 담당이었다.
노래도 제법 잘 불러서 소풍이나 수학여행을 가면 늘 무대에 올라 좌중을 압도했다(나만의 생각인지 모르겠으나 여하튼 내 기억엔 그랬다).
탬버린을 들고 연신 담다디를 불러젖히며 대학교 들어가면 나의 우상 이상은 언니처럼 강변가요제를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나는 많이 웃긴데 개그우먼이 되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고 혼자 심각하게 고민을 하기도 하였다.
중학교 3년을 그렇게 열심히 놀았다.
부모님도 먹고살기 바쁘니 공부하라는 말을 하지 않으셨다.
친구들은 잘 놀고 웃기는 나를 모두 좋아했고, 삶이 하루하루가 참 즐거웠다.
고등학교 생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식을 줄 모르는 이놈의 인기란...
인생 뭐 별거 있어?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
17살 여고생의 삶이 이리도 즐겁고 해피한 것이었다니.
공부를 좀 못하는 거 빼고는 완벽했다.
고등학교 1학년 5월, 그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