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사건 처리는 신경이 쓰이기도 하고, 때론 부모, 자식, 형제자매들 간에 양보 없는 싸움을 벌이는 걸 보고 있노라면 인간에 대한 실망과 회의가 들기도 한다. 그래도 잘 화해로 마무리되는 경우에는 다른 종류의 사건보다 더 보람이 있다. 물론 그 화해가 사건의 종결에 그치고, 진정한 화해에 이르지 못하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1심에서 이혼판결이 난 사건을 항소심에서 다시 잘 합의해서 재결합하고 소송을 마치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2023. 5. 화해로 마무리한 부부 이혼사건은 좀 특별했다.
원고(1964년생, 남)는 평범한 가정의 회사원인데, 직장동료의 소개로 병원에 근무하던 피고(1968년생, 여)를 만나 1년 6개월간의 교제 끝에 1994년 신혼생활을 시작하였다. 원고는 조용하고 말이 적은 편이었고, 비교적 독실한 기독교신자인 피고는 활달하고 다변이었다. 그 사이에 자녀로 1994년생 딸과 1997년생 아들을 두고 있다. 원고와 피고는 혼인기간 중 서로의 성격 차이로 인한 지속적인 분쟁을 겪어왔다. 그러던 중 원고와 피고는 2018. 8. 경 관계회복을 위해 여행을 가게 되었으나 여행 중 발생한 오해로 다시 관계가 악화되었고, 2020. 10. 경에는 원고가 중요한 시험에 응시한다는 이유로 피고 가족의 결혼식에 불참석한 것이 발단이 되어 원고와 피고가 크게 다투는 일이 발생하였다. 2020. 10. 말 피고는 원고가 집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였고, 이에 원고는 집을 나와 계속 피고와 별거하고 있다가, 원고가 2021. 1. 말 이혼소장을 제기하였다.
1심은 가사조사를 거쳐 주로 분할대상의 재산 및 가액을 심리한 끝에, 2022. 4. 원고와 피고가 혼인생활 내내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부족한 상태에서 문제해결 방식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면서 긴장과 갈등 상황이 지속되었던 점, 갈등의 양상이 심화되고 현재까지도 장기간 별거하면서 화합하지 못하고 있으며 관계 개선의 여지가 없어 보이는 점, 피고는 이혼을 원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도 부부관계 회복을 위한 실질적인 노력을 하지 않고 있는 점 등을 더하여 보면, 원고와 피고의 혼인관계가 더 이상 회복될 수 없을 정도로 파탄되었고, 서로의 성격과 입장의 차이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소홀히 하고 갈등상황을 원만하게 해결하여 혼인관계를 유지하려는 의지가 부족하였던 원고와 피고 모두에게 혼인관계 파탄의 책임이 있다고 하였다. 재산분할에 관하여는 피고는 원고에게 8억 4,000여만 원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하였다.
피고는 1심에서도 분할 대상이나 비율에 대하여는 거의 다투지 아니하였고 항소하면서도 이를 다투지 않은 채 ‘혼인관계가 파탄이 되지 않았다, 원고가 주장하는 파탄원인이나 책임에 대하여 경위를 소명하고 회복가능성이 있다, 가정을 지키고 싶다, 그동안의 행동에 대하여 반성한다, 그동안 원고에 대하여 배려하지 못한 피고의 잘못이 크다, 계속적인 회복노력을 하고 있고 소통하고 있다, 27년간의 혼인에 큰 문제가 없었다, 원고도 부부상담 시 이혼을 안 할 수 있다는 언급도 했다’는 취지의 주장을 하면서 2022. 4. 서울고등법원에 항소하였다.
나는 일단 이 사건은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설득하면 화해 조정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일단 조정위원회 조정회부를 하였다. 조정위원회는 2022. 8. 조정을 시도했으나 불성립이 되었다고 하면서 조정위원사무수행보고서에 “원고는 이혼을 강력히 원하는 반면 피고는 이혼을 절대 하고 싶지 않다고 함. 피고는 원고가 원하는 대로 재산을 이전하고, 별거를 원하면 별거도 하고 원고 및 시부모님에게도 원고가 마음을 돌릴 만큼 진지하고 유의미한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으나 원고는 피고가 어떠한 노력을 하더라도 이혼하고 싶다고 의사를 밝힘.”라고 기재하였다.
비록 조정이 성립되지는 않았지만, 당사자가 조정과정에서 보인 의사나 태도를 엿볼 수 있었다. 남성인 원고가 다소 완강했지만, 추가로 부부상담절차를 진행하였는데, 상담결과, 당사자의 의사에는 큰 변화가 보이진 않았지만 약간의 여지는 보였다. 화해의 틈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었다. 무엇보다 이어진 변론기일마다 당사자가 항상 출석하여 소송에 큰 관심을 보였고, 특히 원고의 표정이나 태도가 서서히 부드럽게 바뀌고 있음을 보았다.
나는 2023. 2. 3. 2차 변론기일을 진행하고 화해를 도모하는 한편 재산분할에 대한 피고의 입장을 정리할 것을 요청하였는데, 피고는 여전히 재산분할에 대하여 다툴 생각이 없고 혼인을 유지하기를 원하였다. 2023. 3. 10. 3차 변론기일에서도 피고는 계속 법정에 나와 혼인유지를 위한 화해를 요청하면서 2~3개월의 시간을 달라고 하였다. 나는 사건이 변론을 종결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으나 그래도 마지막까지 혼인유지를 위해 노력하는 피고의 태도와 원고도 조금은 누그러진 태도를 보이는 것을 보고 다음 기일은 3개월 후인 2023. 5. 19.로 정하였다. 화해의 분위기가 무르익도록 시간을 충분히 주고자 하였다.
그런데 재판기일이 다가오도록 당사자는 아무런 서면이나 자료를 내지 않았다. 시간만 낭비한 것 아닌가 하는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제는 정말 사건에 대한 변론을 종결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는데, 원, 피고와 대리인이 모두 출석한 상태에서 쌍방이 우선 종전보다 편안한 얼굴표정을 보였고 추가로 화해에 대한 생각을 내 비추었다. 당사자의 진술을 차분히 듣고 난 다음, 나는 원고가 3개월 내에 복귀하여 동거하고 재산분할의 의미로 피고가 원고에게 아파트의 지분을 이전하고 재결합하는 화해 안을 제시하였고, 원, 피고가 이를 비교적 흔쾌히 받아들여 합의하였다. 그 3개월간 부부는 그동안 쏟아내던 비난의 언어를 그치고 조용한 회복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화해 안을 인쇄하여 당사자 및 각 대리인의 사인을 받고, 화해로 사건이 종결되었음을 선언함과 아울러, 마치 주례처럼, ‘이제 두 분이 배려하면서 성장한 자녀를 잘 결혼시키고 노후를 서로 의지하면서 잘 보내길 바란다, 비가 온 뒤에 땅이 더 단단해진다고 이제는 어떠한 시련도 잘 헤쳐나갈 가정을 일으키도록’ 당부하였다. 이어서 나는 그냥 서류상 화해가 아니라 진정한 화해를 위해서는 약간의 퍼포먼스가 필요하다고 하면서, 서로 포옹하라고 하였고 정 어렵다면 악수라도 하라고 했다. 부부는 일어나 서로 포옹함으로써 진정한 화해의 길로 나섰다. 재판부 일원은 그 모습에 감동되어 뭉클한 마음이 들었고, 나는 잠시 눈시울을 붉히면서 이 부부가 진정한 화해와 용서를 통하여 좋았던 시절을 기억하면서 평생 해로하길 조용히 기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