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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의 정원 Aug 24. 2024

바람이 몹시 불던 날

백합꽃 피는 정원

  가시넝쿨 우거지고 굴렁진 돌밭을 메워서 밭을 만들었습니다. 꽃씨를 뿌리고 나무를 심은지 15년 쯤 지났을 때 정원 길모퉁이에 낯선 식물이 돋아났습니다. 꽃과 나무들은 모두 심고 가꾼 것들이라 모를리 없고, 풀들은 이름을 몰라도 풀이라는 걸 구분은 했지요. 이 식물체는 처음 보는지라 뽑지 않고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대궁에 사방으로 길쭉한 잎새들을 하염없이 내밀고 있었지요. 점점 키만 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길다란 꽃봉오리를 달았습니다. 꽃인건 분명했지만 어떤 꽃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궁금했지만 꽃잎을 벌려 확인하고픈 마음을 참고, 기다려 보기로 했습니다. 며칠이 지나 꽃은 스스로 꽃잎을 펼쳤습니다. 하얀 나팔 같은 여러개의 꽃이 1970년대 시골 마을회관의 스피커처럼 사방을 향해 있었습니다. 바람결에 하늘거리는 하얀 나팔꽃, 아니 백합꽃이었지요. 화원에서, 꽃꽂이에서나 보았던 백합의 성장기를 보게된 것이지요.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 신기했습니다. 제주 자생식물은 분명 아니었으니까요. 꽃이 진 후 씨가 맺히는 방도 길쭉하게 커갔습니다. 백합은 다 길쭉하였지요. 잘 익은 씨들은 저절로 씨방이 열리면서 바람을 기다렸습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씨앗들은 동그랗고 앏고 그림딱지처럼 포개어져 있었습니다. 이 많은 씨앗 중 하나가 어디선가 날아와 발아하여 꽃을 피웠으니 그 여정이 가볍지 않았을테지요. 우리 정원은 숲속의 가장자리에 있습니다. 마을에서 꽤 떨어진 외딴 집 정원입니다.  알수 없는 땅에서 바람이 몹시 불던 날 밤에 날아 왔을까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그대의 삶에 거센 바람이 불고 있다면

원하지도 예상치도 못한 강한 바람에 백합이 찾아 온 것처럼, 그대의 인생에 아름다운 꽃이 피는 과정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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