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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 Aug 26. 2024

인류의 몰락이 온다면 파피용을 타고 꼭 탈출해야 할까?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파피용을 읽고

책 소개

  히가시노 게이고, 베르나르 베르베르와 같은 작가들은 뛰어난 필력으로 대중들에게 인기를 끄는 작가이지만, 공장에서 찍어내듯이 짧은 주기로 책을 계속하고 있어서 과연 책의 내용에 얼마만큼의 무게감과 깊이가 느껴질까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최근에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파피용’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파피용은 나비나 나방을 의미하는 프랑스 어로 나비의 날개처럼 활짝 펼쳐진 귀를 가지고 있는 강아지 파피용도 여기서 유래되었다.


  책을 읽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400페이지 정도의 책 전체를 한 번에 읽었다. 그만큼 작가의 필력과 몰입력이 뛰어나게 느껴졌다. 작품 속 지구는 사회적 갈등이 매우 극단화되어 버스와 지하철은 매일매일 테러의 대상이 되고, 전쟁이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며 환경마저 심각하게 오염된 상황으로 뛰어난 항공 기술자 이브, 그가 낸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된 전직 항해술 챔피언 엘리자베트, 국가 급의 재산을 보유하였음에도 인류를 사랑하는 맥 나마라, 그리고 반전을 지니고 있는 사틴까지 네 사람이 중심이 되어 144000명의 인류가 탑승한 솔라세일 우주선(파피용)을 2광년 떨어진 행성으로 1000년의 시간 동안 이동시키는 과정을 담고 있다.


  흔한 SF 작품의 소재임에도 그 속에 담겨있는 철학이 알베르 카뮈의 부조리 철학과 접점이 크게 느껴져서 이 작품을 소개하게 되었다.



줄거리 요약: 마지막 희망은 탈출이다.

  작품에서 파피용이 발사되는 이유이기도 한 이 문장은 작품 전체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하고 있으며 카뮈의 <반항하는 인간> 속 사례들과도 매우 동일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브와 맥 나마라가 우주선을 계획한 이유는 지구에 있는 인류에겐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은 다른 행성으로 떠나 그곳에서 새로운 인간 사회를 구성하고자 한다. 그러기 위해 1000년간의 여행 이후에도 파피용 속에 인류가 남아있기 위해서는 144000명의 동승자가 필요하였는데, 7가지의 기준을 바탕으로 참여자를 선정함으로써 폭력과 범죄를 예방하고자 한다. 하지만 불과 1년도 지나지 않아서 파피용 내부에서 살인이 발생하고, 이들은 법을 제정하게 된다. 그러나 법에 대한 반작용으로 법이 제정된 다음날 변장해 있던 사틴이 폭동을 일으키고 착륙선을 빼앗아 지구로 돌아간다. 세대가 거듭될수록 내부 사회 속에서 범죄, 살인, 강제적인 관계, 전쟁이 심해지고 수평적인 사회에서 수직적인 사회로 변모하며 왕, 대왕과 같은 호칭이 등장한다. 그 과정에서 인공 태양이 파손되고, 전염병이 퍼지고 떠나기 전 지구의 모습과 별반 다를 바가 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게 행성 근처에 도착한 파피용의 내부에는 단 1명의 소녀와 5명의 소년만이 남아있었다.


  착륙정이 1000년 전에 사틴에게 갈취되었기에 남아있는 것은 오직 급조된 2인승뿐이었다. 따라서 소년 아드리앵 1명과, 소녀 엘리트 1명이 행성으로 착륙하고 그들의 전염병을 토착 생명체인 공룡에 전파시킴으로써 공룡을 멸종시킨다. 이후 지구 생물의 수정체를 이용하여 다양한 종류의 생물을 행성에 퍼트리지만, 아드리앵과 엘리트의 성적 갈등으로 인해 엘리트가 멀리 떨어진 동굴로 떠나고 돌연변이 독사에게 물려 죽게 된다. 이후 아드리앵은 매우 슬퍼하며, 자신의 갈비뼈와 인간 수정체를 이용하여 에야를 탄생시킨다. 난청이 있는 에야는 자신을 이브, 아드리앵을 아담이라 부르며, 사틴을 사탄, 이브를 야훼라 부른다. 그리고 이 작품은 영원히 탈출을 계속할 수 없다며 끝이 난다.



해설: 작용-반작용

  사실 카뮈의 관점에서 봤을 때, 파피용 내부의 혼란은 예정된 시나리오였다. 인간 사회에서 염증을 느낀 인간이 새로운 인간 사회를 창조했지만, 새로운 인간 사회를 이상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엘리자베트가 말했듯 ‘처음의 열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세대가 지날수록 처음의 열정은 흐려지기에 인간은 역사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그들은 초심을 잃고 절대권력을 탐하며, 폭력과 전쟁을 일삼게 된다. 이것이 바로 카뮈가 말한 기존 신을 몰아낸 인간신의 등장이다. 기존의 질서를 부정하고 자유를 추구하는 자는 결국 새로운 질서를 도입하고, 과거에 자신이 부정했던 절대자가 된다는 것이다. 이 철학적 논리를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작용-반작용이라는 표현과 함께 파피용 내부의 역사를 통해서 쉽게 드러내고 있다.


  이에 대해 카뮈는 현실의 부조리에서 벗어나려 하기보다 그 부조리 속에서 의미를 만들어가는 것을 강조했는데, 이것이 바로 작품의 끝에서 아드리앵이 ‘영원히 탈출을 계속할 수 없다.’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매우 잘 드러나 있다. 탈출을 하려는 자는 도피하는 것과 동일하므로 결국 반복되는 역사를 이겨낼 수 없기에 진정으로 인류를 위한다면, 지금 있는 지구의 사회를 지키기 위한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 특히 작용-반작용에 의해 선한 왕과 폭군이 반복되어 등장하는 파피용의 역사는 혼란스러운 사회의 분위기가 결코 영원할 수 없다는 희망을 우리에게 시사함과 동시에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초심을 지키는 것 또한 매우 어려운 일임을 시사하고 있다.


  작품에서는 ‘더 빠르게 더 강하게’라는 표현과 ‘3보 전진 1보 후퇴’이 지속적으로 쇠락하며 변주되는 양상이 드러난다. 나비를 의미하는 파피용이라는 이름도 애벌레가 나비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온 것처럼,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간은 더 나아가길 희망한다. 하지만 나비가 날기 위해서는 기어 다니는 애벌레라는 시기가 필요하며, 나아가기을 위해서는 그 반작용으로 한 발짝 물러나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엘리자베트가 사고 이후 폐인 같은 삶에서 다시 걸음을 걸을 수 있기까지의 과정도 마찬가지이다. 결국 모든 것은 작용-반작용이다. 나아가길 원한다면 물러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되며, 이상사회를 만들고 싶다면 폭력적인 반발을 고려해야만 한다. 그리고 이러한 난관을 뛰어넘을 것인지 혹은 뒷걸음질을 치거나, 난관에 걸려 넘어질 것인지는 모두 마음에 달려있다. 그렇기에 무엇보다도 처음의 열정이 중요하다. 사틴이 엘리자베트를 설득한 근거와 그녀가 회의감을 느껴 다시 지구로 돌아간 근거가 모두 이것에서 나온다.


  이제 제목의 질문으로 돌아가서 글을 마무리해 보자. 마지막 장에서 인간은 마침내 성경의 역사를 스스로 되풀이하며 새로운 행성에서 새로운 시작을 맞이했다. 그들에게 남겨진 과제는 오직 초심을 지키는 것뿐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초심을 지키려고 할수록 지키지 않으려는 반작용이 거세질 것이므로 새로운 행성에 정착한 인간은 영원할까?라는 질문에 역사는 아니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 우리는 초심을 잊지 않을 수 있다. 그러니 매 순간 잊지 않으려는 노력을 하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겐 실낱같지만 끊기지 않을 희망이 남아있는 셈이다.


  무엇보다도 파피용 내부의 사회는 지구의 역사를 되풀이하였다. 우두머리가 없는 공동체 사회에서 갈등이 생기고, 파벌이 생기고, 이것이 전쟁까지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인공 태양이 대다수 파괴되고, 내부 공기가 오염되는 것은 파피용이 떠나올 무렵 지구의 모습과 매우 유사하다. 그럼에도 파피용의 마지막 순간에 남은 6명의 아이들은 인류의 미래를 위해 폭력 없이 2명의 상륙 인원을 결정한다. 이 일련의 과정은 인간 사회가 타락하는 것은 피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희망이 남아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파피용이라는 작은 지구에서 피어난 희망은 원래의 지구에서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나는 파피용 제작을 반대하지는 않았겠지만, 탑승하지도 않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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