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63편 1~4절
시편 63편 1~4절
1 하나님, 주님은 나의 하나님입니다. 내가 주님을 애타게 찾습니다. 물기 없는 땅, 메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님을 찾아 목이 마르고, 이 몸도 주님을 애타게 그리워합니다. 2 내가 성소에서 주님을 뵙고 주님의 권능과 주님의 영광을 봅니다. 3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이 생명보다 더 소중하기에, 내 입술로 주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4 이 생명 다하도록 주님을 찬양하렵니다. 내가 손을 들어서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렵니다.
홍진영의 곡 중에 '사랑의 배터리'라는 노래가 있다. 제목은 몰라도 가사는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한 곡이다. 이 노래는 사랑을 배터리에 비유한 독특한 표현과 흥겨운 리듬이 합쳐져서 한때 중고등학교 축제에서도 뺀질나게 틀었었다.
나를 사랑으로 채워줘요/사랑의 배터리가 다 됐나 봐요/당신 없인 못 살아 정말 나는 못 살아/당신은 나의 배터리
그런데 오늘 묵상은 이 노래와 정확히 반대된다. 오늘 본문에서 다윗은 [사랑의 배터리가 동나질 않아요]라고 노래하기 때문이다. 그는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고, 어떻게 하나님에게서 무한한 사랑을 공급받을 수 있었던 것일까?
시편 63편은 다윗이 유다 광야에 있을 때 지었던 시다. 현재도 그렇지만 이스라엘 지역은 중동 지방 특유의 광활한 사막과 건조한 기후로 유명하다. 우기가 아닌 딴에야 사방에서는 항시 모래 바람이 불어닥치고, 오아시스 근처가 아니면 식물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그런 허허벌판을 유리방황하던 다윗은 다음과 같이 운을 뗀다.
"하나님, 당신은 나의 하나님입니다. 내가 당신을 애타게 찾습니다. 물기 없는 땅, 메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님을 찾아 목이 마르고, 이 몸도 주님을 애타게 그리워합니다."
그는 시냇물을 찾아 헤매는 사슴처럼 절박하게 주님을 찾아다닌다. 이걸 미루어 보면 당시 그가 처한 상황이 썩 좋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사방에는 추격자가 깔려 있는데다가 보이는 것이라고는 끝없는 사막 뿐. 이런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그는 당연하다는 듯이 하나님을 가장 먼저 찾는다. 왜냐? 그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의 배터리는 무한하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주님은 당연히 나를 곤경에서 구원하시리라, 긍휼을 베푸시리라! 다윗에게는 이를 확신하는 믿음이 자리잡고 있었고, 그것이 그의 입에서 노래가 되어 튀어나온 게 시편 63편이다.
그는 하나님을 향한 열렬한 러브콜을 멈추지 않고 "주님의 사랑이 내 생명보다 낫다(3절)"고 고백한다. 인간의 목숨은 유한하고 언젠가 끊어지기 마련이지만, 그에 반해 하나님의 사랑은 무한하다. 다윗은 그 사실을 계속해서 주지시키며, 종종 하나님의 사랑을 유한하다고 착각하는 우리에게 "지레 겁먹지 말고 하나님에게 먼저 다가가라"고 격려한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현대를 살아가는 기독교인에게 모범이 된다. 우리는 때때로 자신의 죄악이나 고쳐지지 않는 나쁜 버릇으로 인해 '하나님이 나에게 질리신 건 아닐까, 이런 인간을 하나님이 사랑하실까'라는 걱정에 사로잡히고, 그 결과 스스로 하나님과 거리를 두게 된다. 자존심 때문에 회개 기도도 좀처럼 나오질 않고, 설령 억지로 기도한다 해도 속에서는 끊임없이 의심이 피어오른다.
그런 이들에게 다윗은 선언한다. "무슨 걱정이야, 주님의 사랑의 배터리는 무한하다! 내 목숨보다도 가치있는 사랑이다!" 라고.
그러나 한 가지 착각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다음과 같은 생각이다.
"그래? 하나님의 사랑이 무한하다고? 그러면 그냥 마음대로 살다가 숨이 꼴깍꼴깍 넘어가기 직전에 '회개합니다,' 외치고 죽으면 되는 거 아니야? 뭐든지 다 용서해주신다면서?"
이는 아주 큰 교만이다. 물론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는 한이 없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 다윗이 보인 태도를 기억하자. 그는 하나님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걸 알기에, 자신 역시도 온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했다. 말그대로 자신의 온 생애를 바쳐서 찬양하고, 하나님을 목숨보다 더 사랑한다고 당당히 선포할 정도였다.
반면 상단의 예시는 하나님을 허례허식으로 사랑하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어쩌다 한 번 생각날 때만 기도하고, 내 일이 술술 잘 풀릴 때만 감사 찬양을 바치는 건 진정한 신앙생활이라고 할 수 없다. 비유하자면 '취미로' 예수를 믿는 셈이다. 이렇듯 사랑받을 줄만 알고 돌려주는 법을 모르는 미성숙한 신앙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무한하다면, 우리 역시 주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전심으로 사랑해야 한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참 어렵다. 만약 이를 온전히 실천한다면 그 사람은 기독교인으로서 지상 과제를 완수한 것이나 다름없다.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제자로서 나 자신도 철저한 신뢰와 애정을 바치는 것, 그것이야말로 제자된 도리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수많은 유혹과 장애물이 존재하기에 대다수가 '그냥 교회만 열심히 다니자, 성경만 열심히 읽자'라며 합리화를 시도한다.
그러나 자기 합리화를 버리고 내 속에 든 사랑의 배터리를 바라보자. 잔량이 어느 정도인지, 수시로 충전하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그래야만 하늘로부터 쏟아지는 무한한 사랑을 받아들일 수 있다. 사랑의 배터리가 끝나버리면 더 이상 어떤 자극에도 반응하지 않아 싸늘하게 식은 마음이 되어, 결국 주님과 멀어질 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랑의 배터리를 채울 수 있을까? 답은 간단하다. 다만 주님께 부르짖고 기도하자. 인간의 알량한 마음으로는 한 대상만을 무한하게 사랑할 수 없다. 하나님도 이를 아시기에 우리가 사랑의 마음을 구하면 그대로 주신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게 막는 것을 물리쳐 달라고, 날 사랑하신다면 내 마음을 변화시켜 달라고 기도하자. 징징거려도 좋다. 목숨보다 귀한 자식의 간청을 무시할 부모는 없다. 하물며 인간보다 크신 하나님이 그걸 무시하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