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직장, 그게 인생의 전부는 아니잖아요?
"공무원 하면 평생 직장 걱정 없을 텐데, 일찍 퇴근하고 네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 수 있을 거야"
대학에 들어가서 전공이 맞지 않아 고민할 때 부모님이 공무원이 되었으면 하고 내색을 비추셨다. 나는 소위 말하는 취미 부자다. 당시에 하고 싶고 배우고 싶은 것도 많았지만 업으로 삼기엔 용기가 부족했기에 퇴근 후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을 거란 말에 매력을 느꼈다. 그때부터 자격증을 따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고 나는 대학 졸업 1년 후, 공무원이 되었다.
아직도 기억나는 눈이 많이 내리던 첫 출근 날. 첫날부터 내 자리에 있는 전화기가 무섭도록 울려댔다. 신입인 내가 할 수 있는 건 눈앞의 전화기가 언제 조용해지나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정식 공무원이 된 후 나에게도 담당업무가 생겼다. 그중 가장 큰 업무는 내가 담당하는 구역 내 허가나 민원 등을 받는 업무였다.
"민원"
이 두 글자가 주는 답답한 심정은 아마 겪어보지 않으면 모를 것이다.
9시부터 6시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전화를 건다. 그 전화의 다수가 불만사항에 대한 것이다. 설명이나 조치를 통해서 화를 누그러트리는 사람도 있지만 원하는 대답을 들을 때까지 전화를 종료하지 않고 화를 쏟아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억울한 사람들도 많았다. 안타까운 사연에 최대한 도와주고 싶었지만 위법이라고 명쾌하게 말할 수 있는 사항들이 아니기에 내가 판사처럼 누구의 잘못인지 판결문을 내려줄 순 없었다. 본인은 억울한데 자신의 편이어야 하는 공무원은 할 수 있는 게 없다 하니 이것도 화가 되어 나에게 쏟아져내렸다.
하루 종일 전화벨은 울려댔고 중간중간 틈틈이 처리한 업무 덕에 생각보다 야근이 잦거나 길지는 않았다. 하지만 회사에서 가져온 부정적인 감정들은 날 갉아먹었고 침대에 누워 울면서 내일이 오지 않길 바라며 밤을 지새울 수밖에 없었다.
부모님이 걱정할까 매일 숨어서 울다 들킨 날
나는 퇴사를 결심했다.
"의원면직하려고 합니다."
면직 의사를 밝히고 많은 사람들이 회유를 했다. 믿고 따르던 사람들이 많았고 그분들의 권유로 부서를 옮기고 다시 생각해 보기로 했다. 이전과 아예 다른 부서로 가서 업무를 하니 힘든 감정이 좀 사라지나 싶었지만 그 자리에 돌아가야 된다는 두려움에 한 번씩 숨이 막혔고 결국 나는 3년 차에 공무원을 그만뒀다.
사실 퇴사를 결심하기까지 정말 힘들었다. 남들은 다 좋다고 하는 직장을 그만두는 내가 한심해 보였고 공무원 경력밖에 없는 내가 바보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계속 이 자리에 있다가는 내가 죽을 것 같은데..
그때 나는 낭떠러지가 보이면서도 앞만 보고 달려가는 경주마 같았다.
하지만 지금의 남편이 달리던 나를 멈추고 눈가리개를 풀어줬다. 무슨 일을 하던 다 잘할 거라고 응원해 주는 내 편 덕에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일단 나와서 무언가를 배우기 시작했다.
퇴사해서 막연히 하고 싶었던 건 꽃집을 여는 것이었다. 평소에 무언가 만드는 걸 좋아해서 제작하는 일을 직업으로 갖고 싶었다. 반년 동안 자격증도 따고 다양한 상품들을 만들어보면서 새로운 꿈을 꿨다. 이후 꽃 회사를 잠깐 다녔지만 생각과는 다른 점이 많아서 빠른 안녕을 했고 창업은 먼 미래의 꿈으로 잠시 접어두며 현재는 설계회사에 다니고 있다.
공무원 그만두면 인생이 끝나는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다. 그때는 너무 위축되어 있어 외길만 보였는데 조금만 용기 내서 둘러보니 많은 길이 있었고 나는 현재 다른 길을 선택한 걸 후회하지 않는다.
당시에 퇴사를 고민하며, 나 같은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고민하고 생각해서 결정했듯이 내 이야기도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인생에 정답이 정해져 있는 건 아닌데,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고 모두 각자의 행복을 위해 달려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