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좋겠다, 미안하단 말이면 다 해결되니
진급하기 위해 이런 것까지 견뎌야 한다니
참고 견디기로 마음을 다잡은 후였지만
매일매일은 지옥의 연속이었다,
파트장은 본인보다 능력 있는 셀장을 견제했다. 겉으론 잘 지내는 척했지만 늘 그의 행동에선 셀장을 향한 견제가 느껴졌다. 셀장은 파트장을 너머 올라가기 위해 그룹장을 공략하고 있었다. 그룹장에 성과를 자랑하고 어필하며 본인의 존재감을 나타내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았다.
그 현장은 총성 없는 전쟁터와 다름없었다.
매일 주간 보고 시간은 변함없이 셀장의 파트원 자존감 학살의 시간이 진행되었다.
파트장은 그 시간에 팔짱 끼고 앉아 그 시간을 즐겼다. 그리고 뒤에 와서 다독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셀장의 이미지가 나락으로 가길 바라며 방관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 나날을 보내던 와중에 나의 눈물샘을 터뜨려버린 일이 생겼다.
주간 보고 시간,
회사 제품에 파트너의 마케팅 자산 사용 해야 하는데 제품의 목업이 나오지 않아 프로세스를 FM대로 진행하면 일정에 차질이 있을 것 같았다. , 나름 대안을 짜서, 파트너와 실 목업이 아닌 이미지로 사용 승인을 받겠다는 보고를 진행했다. 파트장/셀장 두 사람 모두 스마트한 피드백을 줄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지만 나 혼자 이슈를 뒤집어쓰기 전 미리 보고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셀장의 말은 엉뚱한 곳으로 튀었다.
제품의 목업이 나오지 않으면 파트너에 사용 승인을 요청할 수 없다는 절차를 알고 있음에도, 아직까지 사용 승인을 진행하지 않고 무엇했냐며 또 파트원 앞에서 나를 몰아세우기 시작했다.
프로세스를 개인이 바꿀 수 없는 이 회사 구조를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일정에 차질이 발생한 것도 아니고 대안을 가져가서 맞춰보겠다는데 도대체 뭐가 문제인가?
하지만 여기까진 매주 일어나던 일이기 때문에 올라오는 두통을 누르며 참고 있었다.
그런데 늘 셀장을 앞세워 착한 사람 코스프레를 하던 파트장이 나에게 "생각이라는 걸 좀 해 보면 이런 보고는 아예 안 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 안 듭니까?"라는 무시 발언을 날렸다.
'생각이라는 걸 좀 해보면?'
문제가 있다고 징징댄 것도 아니고, 해결할 대안까지 생각해갔는데, 생각이라는 걸 해보면?
순간 파트장에 대한 살의에 가까운 분노가 올라왔다.
맥락도 없었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 건지 그 자리에 있는 실무 모두 알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주간 보고의 목적이 무엇인가?
본인의 업무 현황, 이슈를 공유하는 자리 아닌가?
내가 생각한 대안보다 더 좋은 게 있으면 알려주면 될 것을 (파트장/셀장의 대안 제시는 없었다.) 본인들의 감정을 왜 업무 성실하게 하는 실무에게 쏟아내는가? 실무는 본인들 감정 쓰레기통인가?
그렇게 분노와 억울함에 가득 찬 상태로 주간 보고가 마무리되었다.
주간 보고가 끝나고 파트장이 나를 따로 불렀다.
아까는 미안했다는 것이다.
내 보고는 합리적이었으나 다른 실무들의 보고 내용이 부실해서 코멘트 한 내용이니 마음에 담아두지 말라는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진급 때문에 아무 말도 못 할 거라는 걸 알고 있는 내가 그저 그의 감정 쓰레기통으로 선택된 것이었다.
'사람한테 아무 이유 없이 말로 칼을 꽂아놓고,
뒤에 와서 미안하다는 말만 뱉으면 아무 일도 아닌 걸로 만들 수 있는 너는 좋겠다.'
인간이 덜 돼먹은 사람의 말도 안 되는 얘기를 듣고 있으려니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상종도 하고 싶지 않아 별 대답 하지 않고 화장실로 향했다.
문을 잠그고 앉아 천장을 바라보니, 뜨거운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이 상황에 끝이 있을까?
지금까지의 회사생활도 녹록지 않았다 생각하는데, 도대체 이곳에서 좋은 날이 오는 걸까.
남들의 진급은 쉽게 되는 것 같은데
나는 왜 진급 하기 위해 남의 감정쓰레기통까지 되어야 하는가.
상황에 대한 분노와 앞 날에 대한 막막함으로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진급까지 남은 기간은 5개월 이상,
나를 파괴시켜 버릴 것 같은 증오와 분노를 안고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
증오와 분노는 나의 삶을 점점 삼켜,
퇴근 후 집에 돌아가서도 남편과 아이를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도움이 필요했다. 나는 살아야겠다는 일념 하나로, 그 다음날 바로 사내 상담 센터의 문을 두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