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진급과 맞바꾼 정신 건강
당신은 우울증 전단계입니다.
상담 센터 예약을 하고, 무슨 이야기를 할지 고민할 새도 없이 상담사님을 만나러 갔다.
운 좋게도 경력이 많으신 베테랑 상담사님을 배정받았다.
소파에 앉자마자, 상담사님은 "어떤 어려움이 있어서 오셨을까요?" 하며 화두를 던지셨다.
매일 총알과 같은 가시 돋친 말들만 들어왔던 나는
상담사님의 차분한 목소리에 담긴 그 한마디에
한동안 그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다,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고,
닦아도 닦아도 솟구치는 눈물을 닦으며
내 마음속 가득 차 있던 뜨거운 분노를 함께 흘려보내고 있었다.
상담 선생님께선 내 이야기를 듣고
몇 차례 상담을 지속해 보자고 하셨다.
사무실이라는 공간에서, 하루 9시간 이상의 시간,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비수를 경계하며
긴장 속에 보내는 지금의 상황이 정신적으로 건강한 삶은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 긴장의 삶을 견디기 위해선 도움이 필요할 것 같다고 하셨다.
그렇게 매주 나는 상담 센터를 방문하기 시작했다.
상담사님과 사무실에서 일어나는 부조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나면, 해결되는 건 없지만 일시적으로 마음이 편해지는 효과는 있었다.
상담 시간마다 선생님께선 이 지옥 같은 시간도
진급해서 상황이 바뀌면 달라질 수 있다며
나에게 희망을 주려고 노력하셨다.
이 상황에 매몰되어, 영원할 것만 같은 절망 속에서 파괴되어 가는 나를 건져내는 게 먼저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선생님께선 '진급을 하고 나면 파트장/셀장과 나 사이의 역학 관계도 변할 수 있다.
혹여 그렇지 않다면, 부서 이동도 시도해 볼 수 있을 거다. 지금 마음에 두고 있는 둘째 계획을 실행에 옮겨볼 수도 있을 거다, 이건 분명 끝이 있다.'라고 말씀하셨다.
이 불행의 시작이 진급이라면, 진급 후엔 나의 마음과 상황이 개선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그때까지 상담의 도움을 받으며 버티는 게
우리의 작전이었다.
임신, 출산으로 끝날 줄 알았던 버티기를 난 또 시작해야 했다.
하지만 나의 분노와 좌절을 해소하기엔
부서의 상황이 너무 심각했고, 상담 여건은 제한적이었다.
그렇게 2개월여간 상담을 다녔지만, 점점 나의 상황은 악화되어 갔다.
모니터를 보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떨어지기도 하고, 극심한 두통으로 업무에 집중하기가 어려워졌다. 집에서도 잠을 쉬이 이룰 수 없었다.
매주 나의 이런 상황을 상담사님께 말씀드렸고,
상담사님께서는 이런 나의 어려움이 어느 정도로 심해지는지 말해달라고 하셨다.
그렇게 또 몇 주간은 내가 겪는 감정적 신체적 어려움을 나누는 데 상담 시간을 할애했다.
그렇게 또 몇 주가 흘렀다. 한 달 정도 한 주 동안 나의 상태를 체크하는 상담이 진행됐을 때 즈음이었다. 그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선생님께 나의 상황을 말씀드렸다.
모니터를 보며 눈물이 나는 수준을 넘어 이젠 사무실에서 누가 부르면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했고,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를까 두렵기도 했던 그 상황을 모두 토해내고 상담을 마무리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뒤돌아 서려는 나를 잡아 세우며 상담 선생님은 조심스럽게 말씀을 꺼내셨다.
'"상담을 몇 개월째 진행하고 있지만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 것 같아요.
특히 누군가 불렀을 때 소스라치게 놀라는 등 긴장이 점점 높아지고 있고, 우울의 정도도 심해지는 것 같아요.
많은 상담 경험을 통해 조심스럽게 말씀드리면 우울증이 올 위험도 있어 보이거든요.
상담의 효과가 미미할 땐 원활한 생활을 위해 약의 도움을 받아보는 것도 방법이에요.
원하시면 사내 정신건강의학과를 연결해 드릴게요."
아... 올 것이 왔구나...
우울증 전단계일 수도 있다는 소견까지 받아 들자 이제 내 인생은 회복 불가라는 절망감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정신과에 대한 인식이 아무리 좋아졌다지만, 내가 그곳에 가야만 나아질 수 있다는 현실을 나의 자존심은 인정할 수 없었다.
상담선생님의 걱정 어린 제안이었지만 나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이었다.
우선 "생각해 보고 따로 연락드릴게요" 그 말을 남긴 채 나는 상담 센터를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