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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저미생 Sep 25. 2024

#1 마음에 불을 안고 회사에 가는 엄마

워킹맘 3년차, 노선을 정하지 못한 엄마의 갈팡질팡

8월의 뜨거운 날, 밖에는 햇빛이 작열하지만, 에어콘 아래에서 시원하게 글을 쓰는 시간.

요즘 나의 머릿속과는 너무나 다른 평안한 분위기라 조금은 어색하기도 하지만,

아이도, 남편도 없는 직장인의 휴일 3박자가 완벽한 이 조용한 시간,

그 간 참아왔던 숨을 내뱉아보듯 지쳤던 몸과 마음을 달래본다.



나는 대기업 12년차 직장인, 한 가정의 아내이자 토끼같은 아이를 둔 엄마,

출산 했지만 아직도 회사생활에서의 야망을 놓지 못해 더 크고 싶고 이루고 싶은 것도 많은,

나의 삶의 모든 영역을 완벽하게 가져가야 한다는 일정 크기의 강박이 있는, 욕심 많은 사람이다.  


그런 나에게, 아이의 출산 부터 이어지는 사회적 좌절의 경험은 그 어떤것 보다도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2020년, 1년 여 간의 준비 끝에 가진 아이를 뱃속에 품고 나는 그 해 가장 주목받는 파트너 계약 및 서비스 런칭을 했다. 누가 봐도 당해 가장 중요한 과제였고, 모든 사람들이 나의 진급에 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했다.

나 자신 조차 그랬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제왕 절개의 아픈 상처가 아물기도 전, 조리원에서 받은 파트장의 전화는

"챙겨주지 못해 미안하다" 였다. 특수한 상황이었으니, 돌아와서 다음 기회를 도모해 보자는 것이었다.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성과를 내었는데,

설마 이런 이유로 진급을 누락하진 않겠지 라고 생각 했던 내가 너무 순진했었다.

그렇게 나는 다른 동기들 대비 2년 늦게 과장을 달았다. (연봉은 많이 올려줬으니 땡큐라고 해야하나..)


시간이 흘러 이제 과장 2년차, 진급까지 한참 남았다는 이유로 파트장은 대놓고 업무 배제를 시전 중이시다.

하지만 나는 더 많이 일하고 싶고, 더 많은 성과를 내고 싶다.

뱃속의 아이와 고군분투 했던 프로젝트 덕에 진행했던 일 처리도 빨라졌다.

무슨 일을 맡겨도 이젠 할 수 있는 연차가 되어서 자신감도 많이 붙은 상태인데다,

부장 진급때도 누락이 발생할 수 있기에 고과를 미리 받아놓고 싶은 마음과 함께

4년 전 맡았던 일에서 느꼈던 그 성취감의 도파민이 섞여 더 큰 성취를 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원한다.


주변에선 이제 아이 엄마인데 회사에서 노선을 확실히 정하고 쉬엄 쉬엄 하라고 한다.

파트장도 아이 조금 키워놓고 전면적으로 일하는 방식으로 전략을 짜야한다고 한다.


그런 말을 들을때면,

그놈의 노선이 뭔데? 회사생활에 노선이라는 걸 정한다고 노선대로 가긴 하나요? 라는 반감이 든다.  

아이를 어린이집 종일반에 맡기고 8시간 이상 몸이 묶여있는 회사에서,

할 일이 없어 놀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서 그저 답답하고 마음속에 불길이 일어난 듯 하다.


감사하게도 주변 분들께서 자리를 제안해주시지만, 막상 이동하려니 아이가 있는데 그런 큰 도전을 하는게

맞을까 주저하게 된다. 어쩌면 이 마음의 불길은 겁쟁이인 나 자신을 고려하지 않은 채 욕심만 무럭무럭 키워온 내 탓일지도 모르겠다.


내일도 이런 불을 안고, 또 아무렇지 않은 척 회사로 출근 하겠지만

이 마음의 불길이 나의 마음을 다 태워버리고 공허함과 무력감만 남기게 될까 속으론 너무나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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