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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시몬 Jul 04. 2024

어느 미성숙한 인간의 이야기

감정중독

그 수많은 과거 연애경험에서 나는 어쩌면 진짜 사랑이라는 걸 상대에게 처음부터 근본적으로 줄 수 없었던 사람은 아니었을까.

처음에 상대는, 나에게서 이전 연인에게는 느끼지 못했던 엄청난 매력에 신선함을 느끼고 다가와 본인보다는 더 성숙한 사람일 것이라는 기대 혹은 연애를 시작할 만한 가치가 있을 만한 사람이라고 확신하며 관계를 시작했을 것이다.


그가 다가오게 했던 나의 매력은 그저 트라우마를 감추고 사회적 참여모드로 갖추기 위해 가공된 나의 페르소나였을 것이다.


상대의 기대와는 달리, 나는 막상 연애를 시작하면 내 마음속 어느 기저에 있던 미성숙함이 발현되어, “나는 너보다 가치 있는 사람이며 너는 이런 나를 전부 이해해야만 해”와 같은 같잖은 오만함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항상 연애라는 인간관계를 맺을 때마다 어린 시절 트라우마에서 비롯된 이런 비정상적인 정서적 문제가 발목을 잡았던 것 같다.


나는 학창 시절 외형적인 문제를 지적받으며 비난 혹은 따돌림을 당한 경험이 있었다. 이는 그 이후 내 인생 전반에 영향을 끼쳐 관계의 잦은 단절로 이어졌고 그때마다 나의 감정 혹은 생각을 ‘억제’하는 방식으로 방어기제가 발현되었다. 관계에서의 문제 발생 시 나의 모든 대응 방식은 생각으로부터의 도망, 침묵, 사회로부터의 도망이었다. 자아 형성에 큰 영향을 끼치는 유년기도 비슷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고민이 많고 혼자 생각을 많이 하는 아이였다. 늘 바쁘셨던 부모님은 ‘나의 말’을 궁금해하지 않았고 그저 ‘소심한 아이’, ‘집에만 있는 아이’, 특히 ‘융통성 없는 아이’라는 명칭을 붙였고, 그 수식어는 그대로 내가 되었다. 특히 폭력적이고 가부장적인 아버지는 본인 기준에서 벗어날 시 문제로 인식한 것에 대해 침묵하였다가도 갑자기 욱하며 화를 내고 폭력을 쓰는 분이셨다. 그렇게 나는 착하고 눈치를 많이 보며 조용한 아이로, 가정 밖에서는 억지로 밝고 웃는 아이로 진정한 내 모습이 아닌 것을 내 자아라고 여겼다. 또한 타인과 관계가 불편하거나 나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욱하며 화내며 감정 표출을 해야 문제가 해결되는구나라는 이상한 믿음을 저절로 가졌고 예쁘지 않으면 사랑받을 가치가 없는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것이 나에게 각인된 트라우마이자, 감정중독 패턴이 악순환되는 것의 시작이었다.




이렇게 유년기에 형성된 잘못된 감정 패턴이 이후 연인과의 관계에서도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인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연애를 하면서 문제가 발생하면 욱하며 화를 내는 행동을 하며 거리감을 형성하는 ‘롤러코스터’ 순환을 돌게 된다. 그리고 그 책임을 연인에게 전가하며 화를 키웠다. 나의 부족한 모습 전부까지 사랑해야만 그게 사랑이라고. 가장 평화로운 순간조차 ‘이 사람은 나를 사랑하지 않나 봐, 나는 사랑받을 가치가 없나 봐’와 같은 것을 느끼기 위해 스스로 스트레스를 만들어 괴롭혔다. 그렇게 스스로 자처하여 피해자 역할을 연기했다.


 그리고 상대가 이런 나를 이해할수록 나를 사랑하는 정도를 뜻하는 거라고 함부로 가늠했었다.




사랑의 의미를 올바르게 이해하지도 못한 채 미성숙한 사랑을 하고, 인생전반의 부정적인 경험들이 만든 트라우마에 대한 보상의식 혹은 감정중독에만 빠진 채, 그저 나의 상처만 보듬고 희생해 줄 사람만 원했다.

 

서툴게 느껴졌던 그의 행동과 언어에 베풀었던 나의 여유와 포용은 어쩌면 상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내 일상 속에서도 항상 무의식적 불안으로만 가득 차 , 철저하게 나의 예민함을 감추기 위한 연극으로 겉으로 온전한 사람 인척 그저 로맨스 역할극을 한 게 아니었을까.


결국 그 연애는 나라는 인간이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회적으로 포장한 모습에 호감을 갖게 된 상대방의 호기심으로 시작하여 결국엔 내가 얼마나 하찮은 인간인지 들켜버리고 나서야 비참하게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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