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글이 좋다. 굳이 더 넓게 말하자면 언어와 글자가 좋다. 사람들이 읽고 말할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이고 정석적인 의사소통 수단이니까. 이전 글에서도 이야기한 적이 있었던 것 같지만, 인간의 의사소통은 인간과 다른 생명체들을 다르게 하는 가장 큰 가치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생각과 감정을 교류하는 것도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첫걸음이며, 스스로와의 소통은 생각을 정리하고 자신을 깊게 만드는 행동이다. 언어도 글자도 그런 의사소통의 단초가 되는 요소들이 아니던가. 그를 읽고 듣고 이해하고, 천천히 씹어 삼켜 음미함으로써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서로의 감상을 나눔으로써 자신을 갈고닦을 수 있다. 그렇게만 생각했다.
언제였던가,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짜치다'라는 말이 나온 적이 있다. 짜치다. 같이 들은 모든 친구들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지만, 정작 얼마 뒤에 그 말이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자 아무도 구체적으로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는 그가 포함된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은가? 말하는 중간에 너무나도 낯선 단어가 튀어나왔는데도 불구하고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그래도 맥락이라는 말이 있다. 말 또는 글의 맥락을 살펴봄으로써 알 수 없는 단어의 뜻을 대강이나마 추리할 수 있다는 것은 아마 모두들 익히 아는 사실일 것이다. 나와 친구들이 대화할 때의 맥락을 살펴보면, '짜치다'라는 단어는 기본적으로 '조금 만족스럽지 않거나 기대에 미치지 않는다'는 뜻으로 쓰이는 것 같다.
실제 뜻은 어떨까. 네이버 국어사전에 직접 '짜치다'라는 단어를 검색해 보았다. '쪼들리다'의 경상도 방언이라고 한다. 그럼 '쪼들리다'는 정확히 무슨 뜻인가? 같은 출처에서, '넉넉하지 못하고 어렵다', '돈이나 빚 따위에 시달리다' 그리고 '남에게 시달려 고생을 하다'는 뜻이라고 한다. 맥락을 보았을 때의 뜻과는 아무래도 좀 다른 것 같다. 거칠게 본다면 어떻게든 뜻을 끼워 맞출 수는 있을 것 같지만, 평범하게 보았을 때는 그다지 맞지 않는 사용례 같다.
물론 언어란 것에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뜻이 변하거나 새로운 뜻이 생기는 것은 그리 드문 일은 아닐 터이다. 실제로 웹에 많이 돌아다니는 신조어 사전을 찾아보면 비슷한 뜻으로 해석하고 있는 글도 적잖이 보인다. 필자도 그런 것은 당연한 변화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여기서 원래 생각과는 조금 괴리가 생긴다.
언어는 천천히 씹어 삼키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이런 신조어들이 무슨 뜻인지 제대로 판단하고 이해한 뒤 사용하는 것은 드문 것 같았다. 비슷한 예로, 나는 내 어렸을 때, 혹은 현재도 가끔 사용하는 '쩔다'라는 단어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않았다. 대강 '굉장하다'라는 뜻으로 쓰인다고 받아들이고 있지만 그것의 어원이 무엇이고, 실제로 어떠한 뜻인지는 알아보지 않았고 노력한 적도 없었다. 중요한 것은,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를 사용한 대화는 빈번히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물론 신조어라는 것이 항상 납득할 만한 발생 배경과 이해하기 쉬운 뜻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어느 쪽인지 굳이 따지자면 느낌. 필링에 따라 뜻이 좌지우지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실제 어떤 뜻인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말하는 사람과 받아들이는 사람의 느낌이다. 정확히는 감정이다. 이는 중요한 키워드다.
신조어는 어딘가에 그 근본을 두고 있지 않거나, 그 근본과는 보통 그다지 관계있지 않은 새로운 뜻이 자아내진다. 다만 생각보다 그 뜻은 중요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극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위에 예로서 거론한 두 가지 신조어를 예를 들자면, '짜치다'는 '약간 부정적', '쩐다'는 '긍정적'이라는, 그에 담긴 감정선만 알고 있어도 소통에 있어서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적어도 뚜렷하게 뜻을 담고 있는, 구체적인 물체를 명확하게 지정하는 명사 형태의 신조어를 제외한 서술어 형식의 신조어는 그렇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사람이 소통을 하는 데 있어 흥미라는 조건의 우선순위가 과거에 비해 크게 높아졌다. 자신이 보고 싶지 않은 글은 읽지 않고, 읽기 쉽거나 혹은 느낌이 좋은 글을 추구한다. 이유는 물론 몇 번씩 거론한 적 있는 정보의 과대생산이겠지만, 실제로 중요한 것은 글의 함축과 흥미가 언어를 섭취하게 만드는 가장 큰 요소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를 가장 직관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은 바로 감정의 직접적인 전달이다.
이것이 마냥 나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소통에 감정의 요소가 커지는 것은 시대에 따라 변할 수 있는 당연한 것이지만, 적어도 언어를 천천히 음미하는 시대는 이미 지난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조금 슬픈 변화라고 생각한다.